23. 연봉협상 (X) 연봉동결 (O)

왜 줬다가 뺐는 거야 나쁜 사람

by Eric Kim

그래도...

이럴 거면 그냥 바빠도 1월에 하지...

이건 뭔가 기회를 줬다 뺐는 기분이란 말이야.




1월 중순, 전 직원에게 공지 메일이 날아왔다.


'합병으로 인하여 1월에 예정되어 있던 임금 조정은 2월 중으로 진행될 예정이니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1월에 예정이던 연봉협상이 2월로 밀렸다.

실제 합병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기에 연봉협상을 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협상 후 인상 금액만큼 소급 적용하여 2월 월급에 반영될 예정이라기에 딱히 불만도 없었다.


나는 작년 협상 테이블에서 보여주기 식 영어점수는 따기 싫다며, 내년 협상 때 영어로 인터뷰를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막상 연봉협상 준비를 제대로 못 했던 나는 솔직하게 조금 안심이 되는 마음도 있었다.




2월에 코로나가 터졌다.

회사 내에서도 마스크는 의무화가 되고, 2교대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두 개의 조가 돌아가며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1달 넘게 얼굴을 보지 못하는 동료들도 생겨났다.

이러한 시국에 연봉협상은 당연하게 진행될 리가 없었다. 또다시 전 직원에게 공지 메일이 날아왔다.


'전 직원에 대하여 임금조정이 하기와 같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점 양해 바라오며 관련하여 기타 문의 있으신 분은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일정을 살펴보니 3월이었다. 또다시 한 달이 밀린 것이다.


"어.. 나 연봉협상 밀렸어.."

"뭐야 그러다가 안 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아냐 작년에도 2월에 했었어 어차피 소급 적용해주니까 일단 기다려 봐야지"


나 만큼 연봉협상에 관심이 있었던 여자 친구에게 연봉협상이 밀렸다고 얘기를 하자 그러다가 안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살짝 불안한 마음에 직장 동료들과도 밥을 먹으며 "설마 안 하려는 건 아니겠죠?" "과거에도 안 한적 있었나요?"와 같은 질문을 하며 정보를 수집하였다. 팀장님의 "그런 적은 아직 없다"라는 말을 들은 뒤에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정신없는 업무로 인하여 연봉협상은 잊고 살았다.




3월 월급을 받았는데 아직도 연봉협상을 하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체 공지 메일도 날아오지 않았다.


나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합병으로 정신없는 시기에 대거 이탈을 막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시간을 끄는 게 아닐까?

협상을 통하여 소급받고, 올린 연봉으로 이직을 계획하고 있던 나는 속만 타 들어갔다.

연봉을 올리겠다는 생각만으로 주는 업무 다 받고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4월

전체 메일이 날아왔다.


'타운 홀 미팅을 할 예정이니 11:40분까지 휴게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조용하던 사잠님이 전 직원을 소집한 것이다.

전 직원이 모인 걸 확인한 사장님은 현재 경기가 너무 안 좋다로 시작하여 코로나로 인하여 본사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당분간 직원도 못 뽑는다 등등 10분 동안 빌드업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빌드업이 언제 끝날까 라는 생각이 들 무렵 마침내 본론을 꺼내셨다.


"그래서 2021년 3월까지 월급은 동결이 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배. 신. 감.


그래도 하겠지, 그래도 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기다렸는데 돌아온 건 동결이었다.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걸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나는 인질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동결할 거야 너네 알아서 해 근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취업이 그렇게 안된대'

연봉 동결은 적어도 나에게는 이렇게 다가왔다.


한 편으로 무급휴가에, 반토박 난 월급을 받는 사람도 많은데 그래도 온전한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게 어딘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럴 거면 그냥 바빠도 1월에 하지...

이건 뭔가 기회를 줬다 뺐는 기분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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