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에도 메뉴얼이 있었으면 좋을텐데
오늘도 퇴사라는 고민에 빠졌다.
이럴 때면 퇴사에도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민이 있을 땐 버티고, 저럴 땐 퇴사를 하면 됩니다! 하고.
퇴사와 이직에 관련하여 가장 많이 부딪히는 사람은 엄마다.
항상 “다들 그렇게들 살아”, “다음 회사를 준비하고 퇴사를 해야지”, “왜 못 버티고 그만두지?” 등의 말로 내 마음과 태도를 꾸짖으신다. 그럴 때마다 “시대가 변해서 그래요”, “더 나이가 먹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퇴근하고 공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시잖아요”라는 말로 대응을 하지만 사실 엄마의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그래서 엄마의 조언들이 더 송곳같이 내 마음에 박힌다. 거기에 단 한 번도 내편이 되어준 적이 없다는 섭섭함도 한몫한다.
지금은 매일 같이 퇴사를 외치는 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도 한 회사에서 오래 다니고 성장하여 살아있는 역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다만 길어지는 취업 준비 기간에 지쳐 지금 회사에 급하게 오게 되면서 조금 꼬여버렸다. 그래서인지 한 회사, 업종에서 10년, 20년씩 계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올라온다. 정말 어떻게 그렇게 버티셨나 모르겠다.
Respect!!!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그분들의 글이나 말을 듣다 보면 깊은 내공을 느낄 수가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아 물론 그냥 버티다 보니 오래 하셨구나 하는 분들도 많지만 물론 버티는 것도 능력이기 때문에 그분들도 존경스럽다.
나는 고작 2년 회사를 다니면서 자꾸 내 옆에 계시는 대리님의 모습이 내 미래가 될까 봐 항상 불안해하며 살았다. 12시간이 넘는 근무 시간에 박봉 그리고 부서원들 뒤처리까지.. 대리님이 문제인지 아니면 내 마음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이 분야에 오래 있는다고 남들보다 뛰어난 경쟁력을 가질 거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위치나 대우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도 않는 미래.
이러한 생각은 매일 같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루는 매형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매형은 38세까지 프리랜서로 사진을 찍다가 늦깎이 나이에 회사 인사과에 신입으로 들어갔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에 신입 연봉을 받으며 새로 시작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녔다고 한다. 하지만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을 회사는 인정해줬다고 했다. 또한, 인사과 입장에서 볼 때 30대 중반까지는 기회가 있는 거 같기에 1,2년 일 하고서 그 일을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거 같다며, 조금은 더 붙어 있을 걸 권하였다.
며칠 뒤, 한 회사의 부장님으로 계시는 분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분은 젊을 때 이것저것 경험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다양한 경험 하다 보면 뭐가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다며, 본인도 다른 업종으로 여러 번 변경하셨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이러니했다. 두 분의 말씀이 모두 일리가 있었다.
조언을 통하여 도움을 받아보자 하였던 나의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또다시 판단과 결정은 나의 몫으로 돌아왔다.
고민을 한다고 고민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에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고 싶은데 오늘도 고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가려 스스로를 돌아보니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 가진 어학점수는 모두 만료되었고, 자격증 두어 가지와 짧은 경력뿐. 업종변경을 생각하는 나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회사에서 나름 필요한 존재인데 회사를 나가는 순간 나는 그저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한 마리의 초식동물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회사에 필요한 존재라기보다는 새로운 사람이 지금 나의 일을 소화해내기 까지 필요한 시간과 귀찮음이 오지 않도록 막고 있는 그저 방파제 같은 존재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거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더럽게 씁쓸하다.
오늘도 퇴사라는 고민에 빠졌다.
이럴 때면 퇴사에도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민이 있을 땐 버티고, 저럴 땐 퇴사를 하면 됩니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