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쉽게 살기 어렵지 않다
합병을 하면서 몇몇 사람들이 바뀐 환경과, 시스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퇴사를 하였다.
우리 팀에서도 두 명이 퇴사를 하겠노라고 통보를 하였다. 합병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누군가의 공백은 더 크게 다가온다. 가뜩이나 사람도 안 구해지는 상황에서 경력자 두 명의 퇴사 소식은 위기로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팀장님이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다.
"xx랑 xx가 퇴사를 하기로 하였는데 사람이 안 구해지고 있어.. 그래서 당분간 우리가 그 두 명의 업무를 나눠서 해야 할 거 같아 우선 이 업체는...."
모두가 모인 그 자리에서 팀장님은 업무를 분담하기 시작하였고 나에게도 역시 받아야 할 업무를 알려주었다.
업무를 받고 보니 조금 이상하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좀 많은 양이 넘어온 거 같았다.
'뭐지.. 나도 나가라는 의미인가..?'라고 생각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팀장님은 추가 설명을 하셨다.
"그 업체들은 일을 나누기가 애매해서 그냥 한 명이 다 받는 걸로 했고 대신에 xx 씨에게 기존에 하고 있던 일 일부를 넘기면 될 거 같아"
내 일을 넘기고 새로운 일을 받는 것.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었다. 다만 2년 동안 이런 일이 4번이나 있었던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말이 넘기는 것이지 새로운 사람이 적응을 할 때까지는 내가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업무 분담이 그렇게 된 상황에서 두 사람의 퇴사일 까지 남은 시간은 2주였다.
하필이면 그 2주의 기간에는 월 마감이 껴 있었다.
합병을 한 뒤의 첫 번째 마감이라 그런지 모두가 정신없고 예민하였다.
조그마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불려 갔다,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 것들에 대한 회신은 왜 없냐고 팀장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자주 들렸다. 정신 안 차리고 일 하냐는 파트장님의 소리도 들렸다.
그런 상황에서 평정심을 가지는 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받으며 마감을 하고, 내 일을 넘겨주는 건 사치와도 같았다. 간단히 이런저런 걸 넘겨줄 거고,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천천히 알려줄 테니 우선 메일에 CC만 넣어 놓으면 흐름만 보고 있으라 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그 모든 것을 소화하여야 했다.
시간이 흘러 퇴사까지 1주도 안 남은 상황인데 정작 퇴사 예정자인 S대리님은 인수인계할 준비가 안된 듯싶었다.
본인도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넘기다 보니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갔다.
더군다나 S대리님은 매일같이 팀장님에게 불려 가고 있었다. 급한 것들을 먼저 처리하다 보니 인수인계는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오직 나만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은 퇴사하는 날까지 제대로 된 인수인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S대리님은 미안하다며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만 남기고 그렇게 떠났다.
인수인계도 다 안된 상황에서 회사를 떠난 s대리님이 참 야속하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회사가 보내주는데 내가 어떻게 할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퇴근을 하다 보니 뒤늦게 분노가 올라왔다.
당장 내일부터 고생할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 참을 분노해서인지 집에 거의 도착하였을 때, 갑자기 단것이 당겼다. 평소 군것질을 안 하는 편인데도 그 날 만큼은 세상 모든 단 것을 먹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왔다
'화도 나는데 돈이나 쓰자!’라는 마음으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오예스, 빅파이, 쿠크다스, 아이스크림 등등..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계산대로 향하였다.
5만 something.. 이 정도면 그냥 할인마트를 가는 게 더 싸게 먹혔을 거 같다는 생각.
집으로와 우걱우걱 먹고 있다 보니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하루 종일 화로 가득했던 하루가 간식 몇 개에 기분이 풀려버린 것이다.
이럴 때 보면 인생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거 같다.
단 거 몇 개에 이렇게 쌓였던 화도 풀리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