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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나의 성공은 무엇일까?

어느 날 쓴 일기를 들춰보며...

by 빈공간의 미학

회사 정문을 처음 밟았던 날 무척이나 설렜다. 멀끔한 문 안에는 전쟁통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쏟아졌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했겠지만 나에게는 식은땀 나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가 긴장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출근할 때 헛구역질도 했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두 명의 선배들이 있었다. 한 명은 나의 사수였고, 한 명은 전화기 너머에 있는 선배였다. 나의 사수는 나의 말도 안되는 보고서에도 나의 노력이 가상하다고 칭찬해주었고, 전화기 너머의 선배는 내가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해도 한번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소리 높이거나 꾸짖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고, 모르는 길 위에서 헤매지 않도록 어깨를 잡아 이끌어주었다. 세상에 나와 처음 만난 이들이 따뜻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세상은 종종 잔인해서 처음 마주한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많은 이들이 첫 발걸음을 잘못 디뎌 길을 잃고 흔들린다. 나는 다행히도 그런 불운을 피해갔다. 나에게 이것은 '운'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내 뒤에 후배라는 존재는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바뀌어, 이제는 나를 따라 걷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받은 '운'을 돌려주고 싶다. 그들에게 단지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알게 해주고 싶고, 그들의 일이 어떤 가치를 남기는지 보여주고 싶다. 그들이 나와 이곳에서 함께하면서 세상이 잔인하다는 사실보다 스스로 살아있다는 자부심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주고 싶다.

이 마음은 내가 소대장 시절 느꼈던 그것과 닮아 있다.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다해 조직에 무언가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군 생활이 그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무의미한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소대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회사 또한 시키는 일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지금의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나는 이상을 꿈꾸면서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다. 누군가는 이상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 삶이 달라질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한 발짝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다. 아주 느리고 조용하게 현실을 밀어가고 있다. 그렇게 해서 무슨 이득이 있느냐고 또 묻는 이들에게, 나는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직장에서 성공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요즘이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두 명의 선배처럼 기억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직장 내에서의 성공인 것 같다. 먼 훗날 누군가, 내가 두 명의 선배를 기억하듯이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고 있다면 만족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 후배들도 함께 서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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