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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중심의 채용이란 이름

정보격차의 확대

by 빈공간의 미학

3월 한 달 동안 채용 설명회 및 박람회를 여러 군데 다녀왔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시간도 없이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쉬는 시간도 없고 목이 아팠지만 겨우 '나'란 사람의 의견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지원자들을 보며 한 명이라도 더 상담해주고 싶었습니다. 저에게는 업무의 일부이지만 지원자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간절한 기회일 수 있고, 현직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진심을 다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100명 넘는 분들과 상담하면서 느낀 바를 간추려 적어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최근 채용 시장은 좋지 않습니다. 경제 상황과 세계정세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고 기술의 발전은 도무지 따라잡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기업들은 인원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고, 채용 규모 자체를 상당히 축소하였죠. 여기에 더해 코로나 이전부터 조금씩 시작하여 코로나 이후 기업들은 완전히 직무 중심의 수시 채용으로 채용의 트렌드를 바꿨습니다. 과거 특정기간 대규모로 뽑고 연수 후 배치하던 방식은 사실상 사장되었고, 이제 직무별로 세분화하여 필요할 때마다 채용하는 방식이 대중화되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방식이지만 이러한 직무 중심의 채용은 지원자와 회사 간의 정보 격차를 더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직무 중심의 채용이 되면 세부적인 JD(Job Description)를 공고로 내고 그에 맞는 1~2명의 인원을 채용합니다. (대부분이 소수 인원이고, 적합한 인원이 없으면 채용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필연적으로 경력자를 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와 달리 경력자들의 이직이 매우 활발해졌습니다. 세부적인 JD를 맞출 수 있는 지원자는 해당 직무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애초에 신입들이 그 조건을 채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결국 신입을 뽑지만 최종 면접에 모두 경력자들만 있는 기현상을 보게 됩니다. 애초에 세부적인 JD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신입이 얼마나 될까요? 신입과 경력을 구분해서 뽑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신입 지원자들의 실망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경쟁의 출발점이 달랐던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탈락해야 하죠.


신입 지원자들은 떨어지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고민이 깊어집니다. 애초에 출발점이 달랐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나의 부족함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형에 AI 전형이란 게 추가되어 AI 전형에 대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서류 전형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AI 전형을 보게 하고, 이를 종합하여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AI 전형 후 불합격이 나오자 지원자들은 내가 지원하는 직무에 맞는 AI 점수를 받기 위해 게임 방법과 답변 방식을 공부합니다. 사실은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은데 불필요한 부분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것이죠. 정보의 격차가 만들어낸 가장 잘못된 폐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또 한 가지 안타깝게 느낀 부분은 석박사 진학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다다익선. 고고익선. 지원자들에게는 마치 주문과 같은 단어 같았습니다. 자격증이 많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취업에 유리할 것이란 막연한 생각입니다. 특히나 고고익선, 즉 석사나 박사 학위를 따면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상위권 대학이라고 불리는 곳일수록 심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취업에 석박사가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높아진 학력 수준은 기업에서 비용이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신입으로 뽑기 주저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당연히 석박사가 필요한 직무가 있습니다. 그저 높다고 좋다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생각해 보면 졸업자 중 소수만 대학원을 진학했고, 그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취업의 대안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석사과정을 생각했습니다. 워낙 취업의 과정이 어렵고 정보가 없다 보니 막연히 학위를 취득하면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회사와 지원자 간 인식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너무 큰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요에 의해 석사를 하는 게 아니라 석사를 해야 취업에 유리할 것 같다는 막연함은 2년 ~ 3년의 기회비용을 지원자 차원에서 투입하는 것인데 실제 결과값과는 요원하죠. 또한 이토록 높아진 학력 인플레이션만큼 우리 산업이 고도화되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산업의 경쟁력 수준은 그대로인 채 치열한 경쟁의 바구니 안에 청춘들의 고민의 골만 깊어지게 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몇 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어느 한 회사를 꼭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직무 중심의 채용이란 트렌드가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나의 취업기간 동안 그 기업의 해당 직무는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기업에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가 나오는 것은 운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꿈의 기업을 생각하기보다 해보고 싶은 직무나 관심 가는 직무가 있으시면 나오는 모든 공고에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취업은 대학 진학과 다릅니다. 높은 점수를 얻는 게 아니라 나와 맞는 회사 하나만 취업하면 됩니다. 누가 떨어진 개수를 확인하지도 않고, 점수가 나오지도 않죠. 다다익선은 스펙이 아니라 지원서에 적용됩니다.


두 번째로는 마인드셋입니다. 제가 상담한 지원자들은 대부분 뛰어났습니다. 여러분의 능력이 부족해서 불합격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아직 나와 맞는 회사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해 주세요. 실제로 여러분들은 훌륭합니다. 회사가 날 고르는 게 아니라 내가 회사를 고른다는 생각은 이 험난한 채용 시장을 헤쳐가는데 분명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리고 기왕에 회사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내가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해 보세요. 잔인한 이야기지만 회사는 여러분이 열심히 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지원자가 이 회사에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가 궁금하죠. 내가 열심히 산 것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회사에 입사했다고 가정하면서 어떤 공헌을 통해 기여할지 미리 생각해 보면 다른 지원자들과 분명 차별화가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면접에 대한 Tip입니다. 면접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을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시중에 훌륭한 분들이 쓰신 책들이 많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은 그 책들을 참고하시면 될 겁니다. 저는 그놈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면접관 입장에서 지원자가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있는지는 실제로 함께 일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면접장에서 밝혀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의 본질은 지원자가 '묻는 말에 대답하냐'입니다. 저는 이게 회사 생활에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실무자들이 면접에 대부분 들어가는데, 결국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겁니다. 그럴 때 제일 중요한 건 말귀를 알아듣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묻는 말에 답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국은 자기가 준비해 온,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죠. 신입일수록 긴장하기에 더 그런 경향이 있는데, 짧게 말해도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기 마련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나의 직무가 회사 성과에 대해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면 '묻는 말에 답하기'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용의 트렌드가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불과 5~6년 사이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제 그 변화는 기업들 사이에서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학과에 대한 선택에 대해 고민한 정도였고, 학과를 정하면 대략 내가 갈 영역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직무에 대한 이해도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과연 우리 고등교육은 이러한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교육은 그대로인데 시대가 변화하면서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본 예비 지원자들을 보면 분명 이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가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고 어려움을 타개할 노하우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자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결국 회사를 고를 것이며, Fit 한 회사를 찾아낼 것입니다. 비판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되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잃지 않으시길 바라며 응원의 말로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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