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력 쇠함
어머니께서 감기에 걸리셨다는 얘기를 듣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천식이 있으셔서 목감기를 한 번 치르시고 나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화 통화 너머로 말씀하시는 내내 쇳소리 같은 숨소리가 나왔습니다. 거의 매년 겪는 일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어찌 된 게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을 넘어 기력이 쇠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숨이 깊으셨고, 계속 그냥 누워있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칠순에 가까운 나이시지만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제 기억에 어머니는 감기에 걸리셔도 기운이 없다고 하시거나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당당하셨고, 별 것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력이 없다고, 그냥 누워 있고 싶다고, 이제 일을 그만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고,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도 자주 하지 않은 시간이 오래되었습니다. 그 사이 항상 똑같을 것 같던 어머니도 많이 늙어가고 있었다고 뒤늦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아 전화를 끊고 전복죽을 배달시켜 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에 전복죽을 받으신 어머니께서 다시 전화가 오셨습니다. 전복죽을 받으시고는 노발대발하시면서 화를 내셨습니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이런 거 하면 내가 다시는 아픈 이야기 안 한다고 하셨습니다. 본인 건강은 본인이 알아서 챙긴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항상 말씀하신 어머니는 전복죽 한 그릇에도 본인이 짐이 되신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어쨌든 어머니는 전복죽을 잘 드셨고, 깨끗하게 비운 그릇과 함께 '고맙다 아들아'와 함께 '앞으로는 보내지 말아라'라는 카톡을 보내셨습니다. 안쓰러움과 동시에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이 세지는 데는 우리 어머니도 예외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쉬신 적이 없습니다. 저를 낳고는 갓난아이였던 저를 엎고 일터로 나가셨고, 이제 제가 걸을 수 있을 때는 저를 데리고 함께 일터로 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학생일 때도, 취업한 이후에도 아프셔서 병원에 있으셨던 적을 제외하고는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체구가 작으시지만 항상 강인하셨고 성실하셨습니다. 일이 즐거워서 하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을 지탱하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여기며 사신 것 같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본받아 저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성실함을 중요한 가치로 항상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삶의 기준이자 모델인 어머니의 기력이 쇠한 모습을 보니 제 마음 한구석이 비어버린 듯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기력이 쇠하신 건 단순히 신체적인 노쇠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어머니의 기력을 쇠하게 만드는 건 아마도 외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오셨고,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자식들은 장성하여 모두 각자의 직장에서, 각자의 가정에서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이제 더 이상 양육의 대상이 아니라 부양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본인의 노력과 희생으로 자식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된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우시겠지만 동시에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는 생각, 삶의 원동력이었던 책임감이 소멸되었다는 생각도 드실 겁니다. 그게 외로움의 원천이 되지는 않으셨을까, 그리고 그 외로움이 어머니의 기력을 쇠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에게 '이제 제2의 삶을 사셔야 한다', '열심히 사셨으니 이제 자녀들이 드리는 돈으로 여가를 즐기셔라'라고 말하는 것은 참 쉬운 말입니다. 그렇지만 여태껏 살아온 삶의 양태와 태도를 갑자기 바꾼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2의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실 것이고, 전복죽 한 끼를 얻어먹는 것도 짐이라고 생각하시는 어머니에게 그런 말은 '혼자서 알아서 잘 좀 사세요!'라고 들릴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도 이번 생은 처음입니다. 나이 먹음도 처음이구요. 또 다른 삶의 방향성을 알아서 설정하라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외롭고 무서운 일입니다. 지금 어머니가 처하신 상황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 형제들은 지금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매우 독립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살고 있죠. 독립적으로 살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도록 하신 것은 부모님의 교육관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교육관에 감사함을 갖고 있습니다. 각자가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머니도 이제 어머니 나름의 삶을 사셔야 합니다. 자식들이 항상 옆에 있을 수 없기에 일을 그만두신 후에 새로운 삶을 찾는 게 어머니에게 놓인 현실적인 과제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기력을 쇠하게 한 외로움이 어머니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 책임은 자식인 저도 함께 나눠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준비하셔야 하는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덜 외롭도록, 어머니의 옆에 누군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전복죽이 어머니의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멀리서나마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은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기가 아닌 외로움이 어머니의 기력을 모두 빼앗지는 않도록 하고 싶네요. 어머니께서 제 스스로 인생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신 것처럼 저도 강요 대신 함께 고민함으로써 어머니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