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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법

성실함에 대하여

by 빈공간의 미학


회사에서 면접 볼 때 가장 기본적으로 보는 태도는 무엇일까요? 저는 성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가 중요하냐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Top 3 안에 성실함이 들어갑니다. 이를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르지 않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해 준비합니다. 면접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회사 생활에서도 성실함을 무기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면접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와는 다르게 실제로 성실함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인식에는 괴리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실하다'는 단어는 자유를 버리고 스스로 구속된 노예라는 조소의 표현으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근면성실로 대표되던 산업화 시대의 가치는 이제 구 시대의 유물로 전락하였습니다. 성실하다는 말은 이제 '기회에 밝지 않고, 그저 타인이 원하는 일만 열심히 한다'는 말로 치환되어 버렸다는 느낌도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성실함'이란 단어의 의미가 너무 축소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끼고 '성실함'의 가치가 폄훼되고 있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성실함의 가치는 왜 폄훼되고 있을까요? 과거에는 내가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여 결과를 가져오던 시대였습니다. 성실함 그 자체가 자본으로 치환될 수 있었던 시대였죠. 그러나 지금은 성실함을 기반으로 한 노력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음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결과를 보장하지 않음을 너머 사용이 다하면 버려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죠. 극대화된 양극화와 경험하지 못한 저성장 시대에 돌입하면서 '꾸준하게 보이는 성실함'보다 '기회를 찾아내는 비상함'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가치가 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성실함이 어떠한 결과를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음은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렇다고 성실함이 곧 노예의 길을 의미하느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실함이 지나치게 축소되어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함은 단지 장시간 노동으로 대표될 수 있는 행동양식이 아닙니다. 성실함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며, 그 함축된 의미를 이해한다면 '성실함'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실함은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는 행동의 성실함입니다. 이것은 전통적 가치로서의 성실함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소대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소대원들에게 강조했던 세 가지를 예시로 들겠습니다. "하나! 뺑기치지 말자. 둘! 거짓말하지 말자. 셋! 시간약속 늦지 말자." 아주 간단합니다. 다 같이 해야 하는 일에서 도망가지 않고, 상대를 속이지 않으며, 주어진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행동의 성실함입니다. 행동의 성실함은 타인에게 신뢰를 형성하는 기본이고,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사고의 성실함입니다. 이것은 제가 추가하고 싶은 성실함의 정의이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쇼츠의 시대, 요약본의 시대, GPT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 쉽게 결론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A와 B 사이에는 수많은 상황의 복잡성과 논리적 연결성이 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쉽게 회피합니다. 너무나 빠른 세상의 변화 앞에서 바쁘다는 핑계는 '어쨌든', '아무튼', '하여튼'이라는 단어로 치환되어 "A는 B다"라고 결론을 내버리죠. 이것은 효율이 아니라 무사유에 대한 변명일 뿐입니다. 빠르게 내린 결론으로 기회를 잡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의 성실함 없이 결론만 찾다 보면 잡았던 기회는 몰아치는 문제상황과 수많은 인과관계에 대처하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주한 문제 상황과 문제의식에 대해 끝까지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려는 태도가 바로 '사고의 성실함'입니다.


과연 성실함은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요?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이 성실함 그 자체가 무엇인가 도달하는데 보장이 되던 시기는 끝났습니다. 나아가 성실하다고 하여 좀 더 부유해지거나 남들보다 성공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기회를 포착하는 기민함이 부와 명예, 성공이란 결과를 가져오는데 훨씬 용이할 겁니다. 하지만 기회를 잡아 무언가를 이룬 다음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와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합니다. '행동의 성실함'을 통한 신뢰 형성과 '사고의 성실함'을 통한 인식의 깊이는 쌓아 올린 것을 지키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쌓아 올린 것은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서로에게 대한 신의가 부족해지고 손쉽게 상대의 입장과 생각을 단정 짓는 현상들을 많이 목도하게 됩니다. 이런 때일수록 비록 고루해 보일지 모르지만 '성실함'이란 전통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실함'이란 가치가 여전히 중요하며 폄훼되지 않았으면 하고, '성실함'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제되어 있는 가치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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