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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

'쉽지 않다'란 단어에 대하여

by 빈공간의 미학

1.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단어를 두 번째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드렸던 단어는 '유효하다'란 단어였습니다. '유효함'이 가진 현재성에 집중하여 단어가 내포한 의미와 그 단어를 되새김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써보았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단어는 '쉽지 않다'입니다. 쉬우면 쉬운 거고, 어려우면 어려운 거지 뭐 하러 '쉽지 않다'라는 애매한 단어를 쓰냐고 의문이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애매하게 보일 수 있는 '쉽지 않다'란 표현 안에 숨은 에너지가 저에게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지금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 대학생활 중 친하게 지내던 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쉽지 않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읊조렸습니다. 누구에게 들으라고 한다기보다 말 그대로 그냥 읊조리듯이 말했습니다. 어느 날도 고민에 쌓인 표정으로 과방에서 멍하니 앉아 있길래 옆에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선배, 무슨 문제 있어요?" 그러자 그 선배는 "야, 쉽지 않다."라고 찡긋 웃었습니다. 그래서 되물었습니다. "선배는 힘들다, 어렵다도 아니고 왜 '쉽지 않다'라고 해요?" 그러자 그 선배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힘들다고 하면 기운 빠지고, 어렵다고 하면 압도당하는 것 같잖아. 그렇다고 안 할 거야? 할 거잖아. 그러니까 '쉽지 않다'라고 한 마디 내뱉고 방법을 찾는 거지." 그때 이후로 저도 '쉽지 않다'란 단어에 빠졌습니다. 현재 상황의 힘듦을 담아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졌습니다.


3. 제가 '쉽지 않다'는 단어를 언제 주로 사용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로는 계획했던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주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무언가 처음 시작하거나 도전할 때도 주로 쓴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감이 잡히지도 않을 때 큰 한숨과 함께 썼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모든 상황에서 '힘들다'거나 '어렵다'는 단어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선배가 말한 것처럼 '힘들다'와 '어렵다'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단정해버리거나 나 자신이 두려움에 압도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두 단어를 대신하여 '쉽지 않다'라는 단어로 치환하려고 합니다. '쉽지 않다'라고 말함으로써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굴복하지는 않으리라고 의지를 다지면서 말이죠.


4. 저는 '쉽지 않다'라는 단어에서 니체의 '아모르 파티'를 떠올립니다. 네 맞습니다. 김연자 가수께서 부르신 그 '아모르 파티'입니다. 아모르 파티는 라틴어로 Amor(사랑)와 Fati(운명)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니체의 방식으로 해석하자면 "Amor Fati"란 단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운명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니힐리즘(Nihilism)이 허무주의로 번역되다 보니 니체란 철학자가 모든 사람에게 삶의 허무함을 전파한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니체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를 긍정하고, 긍정을 넘어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라고 역설한 철학자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jpg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5. 니힐리즘에도 수동적 니힐리즘이 있고, 능동적 니힐리즘이 있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하니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라는 태도는 수동적인 니힐리즘 상태이죠. 반면, "비록 내가 처한 세계가 아름답지도 않고 부조리한 현실에 놓여있지만, 나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꿔가겠어."라는 태도는 능동적인 니힐리즘 상태입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란 단순히 내게 주어진 이 고난과 고통이 운명이려니 하며 그냥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니체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강조하였습니다. 내 운명을 사랑스럽게 만들기 위해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되 나만의 관점과 삶의 태도로 운명을 개척하라는 뜻으로 '아모르 파티'를 외쳤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 '운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6. 저에게 있어 '쉽지 않다'는 말은 '아모르 파티'를 위한 다짐입니다. 경제가 불황이고, 세계정세는 불안정하며, AI가 우리 삶에 습격하듯이 들어오면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를 생각합니다. 때때로 인생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의 상황은 정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변화가 발생하고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저 현실에 압도당하거나 두려움만 느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쉽지 않네!"를 읊조립니다. 그리고 "쉽지 않네!"의 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접속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내 운명을 사랑스럽게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할 것이고, 그것은 결국 내 삶을 변화시켜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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