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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의미

5박 6일간의 제주도 여행

by 빈공간의 미학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긴 연휴를 맞이하여 제주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4월 30일 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이동하여 5박 6일간의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제주도는 변화무쌍한 날씨와 다양한 경관을 보여줍니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있다 보면 마치 '제주도가 내가 오길 기다렸나'하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강풍 특보가 발령되더니 '도대체 여기 왜 왔느냐고'라고 묻는 듯한 날씨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나무 숲길 사이를 지나다 갑작스레 나오는 광활한 바다의 모습을 보면 '그래, 여긴 섬이지. 끝엔 언제나 바다가 있지'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매일 같이 답답한 사무실 안에만 있다가 제주도의 날씨와 경관을 보고 나면 내가 내딛고 있는 물질의 현실은 바로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아름답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김포공항으로 돌아가기 직전 제주공항에서 글을 쓰면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들어오고 또 나가는 모습을 봅니다. 과연 제주도를 찾는 많은 여행객들에게 이곳 제주도는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 제주도는 '아주 가끔 만나는 친한 친구' 같다는 느낌입니다. 제주도란 공간을 이미 여러 번 다녀와보기도 했고, 매체에서 워낙 많이 다루는 장소이다 보니 우리 모두에게 익숙할 것 같습니다. 어떤 광경과 모습을 보여줄지 예측이 되죠. 그래서 편합니다.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어제 본 것 같은 친구이지만 일 년에 한 번 만나 인생 이야기를 업데이트 해야겠죠. 제주도 여행은 가끔 본 친한 친구와 인생 넋두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나아가 사람들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집니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의미합니다. 유명한 여행 유튜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보는 사람들을 대면하고 처음 먹어보는 음식, 전혀 다른 언어와 생활방식을 마주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생을 좀 더 풍성하기 위함이겠죠. 반면, 저에게 있어 여행은 경험보다 쉼이 목적입니다. 저는 익숙한 것을 편하게 느끼고 내향적인 사람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익숙한 맛에 안정감을 느끼고, 아무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생존을 위한 외향성으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내향인입니다.


제가 내향인이라고는 하지만 여행지에서 혼자 다니는 건 외롭다고 느껴집니다. 누군가는 혼자서 밥도 잘 먹고 등산도 다니고, 그 시간이 온전히 본인 것이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도 평소에는 혼자 있는게 좋습니다. 혼자서 밥도 잘 먹고요. 그렇지만 여행지에서만큼은 외롭더라고요. 그 외로움이 혼자 하는 여행의 본질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여행에서만큼은 혼자라는 사실이 불편하더군요.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은 충분한 '쉼'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쉼'으로서의 여행의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결론을 지어보았습니다. 저는 같은 공간을 여러 번 가도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성산일출봉일지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것과 친구들과 함께한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또 같은 쇠소깍을 갔어도 와이프와 탄 것과 장모님과 탄 것은 또 느낌이 달랐죠. 저는 새로운 경험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저에게 쉼이 된다는 확신이 드네요.



제주도에 가면 꼭 하루는 조용한 숙소를 선택합니다. 그 안에서 머무르면 나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됩니다. 매번 현실 안에 갇혀있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릅니다. 전쟁통에서 내가 왜 총을 쏘고 있는지 생각하면 죽습니다. 그래서 현실에선 적이 누구인지, 왜 내가 총을 들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한 채 적진을 향해 총을 쏘고 있죠. 고요한 정적과 가끔씩 울리는 새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는 치열했던 현실 안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당장 의미 있는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대단히 거창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도 아니죠. 그저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하게끔 합니다.


제주도는 저에게 '가끔 만나는 친한 친구'이자 저에게 가장 편안함을 제공하는 '쉼'의 공간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현실의 치열함을 잠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어디이신가요? 그리고 여러분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신가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에서 모두에게 다른 경험과 의미를 선사해 줄 제주도가 참 고맙습니다.

p.s.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역사를 품고 있는 제주도. 모든 사람에게 밝은 면과 어둡고 슬픈 면이 공존하는 것처럼 제주도도 그런 아름다움과 비극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오면 단순히 휴양지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성찰하고 고민하게 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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