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삶의 한 챕터를 정리하며

나의 이직에 대하여

by 빈공간의 미학

1. 이직이라는 큰 변화

11월부터 1월까지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한 달에 한 편은 Brunch에 글을 쓰자고 약속했었는데, 어느새 세 달이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제 삶에 이직이란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회사로 옮긴지 한 달 정도 되어갑니다. 6년 다닌 회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회사로 옮기다는 게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분명 삶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리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네요. 이러한 큰 변화를 겪으며 삶의 한 챕터를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저의 이직에 대해 정리해보려 합니다.


2. 전 직장에서 배운 것

군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전역한 후 공부를 좀 하다가 첫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란 시간이 지났네요. 참 고마운 회사였습니다.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삶의 기틀을 잡았으며 커리어의 방향을 설정하도록 기회를 주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참 많은 것들을 배웠는데요, 저는 과연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봅니다.


첫째, 회사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적인 기능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있고, 저 역시도 제조업에 있었습니다. 산업이 조금 특수하긴 했지만 근간은 제조업이었기에 제조업의 기본적인 기능이 무엇이 있고, 그 많은 수 천명의 사람들이 어떤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조직은 의사결정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의사소통의 형태는 다양할 수 있지만 결국 회사라는 조직은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있고, 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일하고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결정 그 자체가 아닌 수행 과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죠. 조직도 안에 있는 그 선, 다시 말해 조직설계가 조직 그 자체의 성격과 작동 방식을 결정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화자와 상황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배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들을 수행했습니다. 임원 및 부서장들과 주로 만나 각 부서의 입장이 얼마나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는지 알았으며, 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고충처리를 하면서 조직 안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았습니다. 화자와 상황에 맞는 대화의 톤앤매너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경험적으로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3. 아쉬웠던 점

회사가 참 고맙지만 좋기만 했다면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무엇인가 아쉬운 점이 있기에 이직을 결정했겠죠.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속한 조직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곳으로 터전을 옮기고 깨달은 점은 이전 회사만의 좋은 점이 또 많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될 줄 모른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말해보려 합니다.


1) AI 시대를 대비하는 자세

첫 번째 아쉬움은 AI 시대를 대비하는 자세였습니다. 회사는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AI 프로그램의 사용을 제한하였습니다. Chat GPT, Gemini, Claude, Perplexity와 같은 기본적인 프로그램들은 사용할 수 없고, Copilot만 사용할 수 있었죠. 일부 인원들에 대해서만 복잡한 승인 절차를 통해 허용된 프로그램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의 변화입니다. 글을 쓸 때도,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업무를 기획할 때도 AI와 대화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도구들이 가장 필요한 회사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우회적으로 개인 태블릿을 들고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Notion에 내용을 붙여넣으며 사용했습니다. 집에서는 AI를 쓰는데 정작 필요한 회사에서 못 쓴다는 점은 참으로 모순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의 방향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의 이직에 대하여_3.png Gemin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2) 안정이 곧 정체로 느껴진 순간

두번째는 조직이 완전히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조직은 매우 크고 안정적이었습니다. 제조업체임에도 불구하고 10~15%라는 높은 영업이익률을 보였죠. 조직의 구조는 항상 그대로였고, 인력도 큰 순환이 없었습니다. 10년 전이었다면 저도 이직을 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정감이 주는 삶의 행복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변화의 파고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보안 이슈가 AI란 변화를 막는 것도 조직의 현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았습니다. 안정이 곧 정체로 느껴졌습니다.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이지만, 5년 후 10년 후를 생각하면 이 안정감이 오히려 위험 요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이직에 대하여_2.png Gemin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3) 직무 변화에 대한 갈증

마지막 아쉬움은 직무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는 점입니다. 노무를 주된 업무로 하고 있었는데, 인사로 직무를 전환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보시기엔 노무나 인사나 동일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일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사업장에 있다 보니 노무 관리를 하면서 임직원 전반에 변화를 주는 기획을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은 많았지만 사업장 소속인 것과 동시에 인사 관리에 주도권이 없다 보니 상상에서 끝나는 점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제가 구상한 것들을 직접 실행에 옮겨보고 싶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지고 싶었습니다.


4. 기대하는 점

이전 직장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옮기는 직장에는 기대가 있는 법이겠죠. 저 역시 기대하는 점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직무를 전환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무에서 인사로 직무를 전환하면서 그 중에서도 평가보상과 직무관리 영역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와 관련된 역할을 시작하고 있고 저에게 주도적인 역할이 부여되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일부 사람에게 주어진 행운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 회사는 AI 관련한 전환에 상당히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됩니다. 회사 규모가 이전 회사보다는 훨씬 작기에 변화가 확산되고 가시화되는 것도 빠르리라 생각합니다. 한달 간 적극적으로 AI 프로그램을 활용하면서 이제 AI 프로그램 없는 직장생활은 상상이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5. 삶의 한 챕터를 정리하며

언제나 아쉬움과 기대는 공존하는 법입니다. 현 회사에 바라는 바가 있었지만 또 이곳에서 적응을 하다보면 아쉬운 점이 나타나고 또다른 파랑새를 찾듯이 이직을 택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분명한 건 조직 생활의 90%는 사람입니다. 어떤 상사와 동료를 만나느냐가 직장 생활이 꼬이냐 아니냐를 판가름내죠.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전 회사에서도 현 회사에서도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전 회사에서는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는 상사들과 손발이 맞는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반말하는 임원, 팀장 없이 저의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협조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믿지 않던 신을 소환하여 감사하게 되네요. 그리고 현 회사에서도 서로를 신뢰하고 배려하는 분들을 상사와 동료로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고 앞으로가 기대가 되네요. 이분들에게도 제가 행운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나의 이직에 대하여_4.png Gemin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저에게 이직은 굉장히 큰 삶의 한 챕터를 끝낸 느낌을 줍니다. 큰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습니다.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이직과 잔류의 기로에서 저와 같은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완벽한 조직은 없다는 것입니다. 현 회사를 떠나려는 이유만큼 이직할 회사에는 떠나야 할 이유들이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직해야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무언가를 피해서가 아닌 나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이 있어야 후회하지 않을테니까요.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증명될 것이라 믿습니다. 새로운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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