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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훈 Jan 19. 2022

추억 안기

빅뱅 "붉은 노을"


2000년대 초등학교 교실의 나무 바닥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오토튠이 가미된 외침으로 시작된다. "난 너를 사랑해!"


그리고 곧바로 신나는 비트가 드롭된다. 그 비트 위로는 "2008 잇츠 빅뱅~" 하면서 곡의 발매 시기와 가수명이 들리는데 이 부분은 노래를 듣는 내 머릿속을 타임머신처럼 느끼게 한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머릿속의 조종석 핸들을 잡고 나무 바닥에서 출발해 점차 위쪽으로 비행해 보는 셈이다.


실내화를 신고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들, 흑칠판과 칠판지우개 그리고 한쪽 구석에 놓인 지우개 털이기, 윈도우 XP의 로고가 화면에 떠 있는 커다란 TV, 천장에 달린 선풍기. 영락없이 2000년대의 교실 풍경이다.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다. 그중엔 나도 있는데, 엄마가 매일 아침 무스로 빗어넘겨준 머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있다. 열심히 수업을 들으면서도 쉬는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쉬는 시간에는 바닥에 앉아 딱지치기, 카드 게임, 살구 놀이 등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삼삼오오 모여 어제 방송에 나온 아이돌 무대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빅뱅, 2pm, 2ne1, 원더걸스 등의 아이돌 노래들을 접하며 자랐다. TV로 그들의 번쩍번쩍한 무대를 챙겨보고 다음날 학교에 와서 시끌벅적 이야기하곤 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노래들을 틀어주시곤 했는데, 그중에서 몇 곡은 율동을 만들어 특활 시간에 가르치시곤 했다. 우리는 율동을 배우면서 팔을 쭉 뻗어 앞사람을 툭 툭 치는 등 장난을 치곤했다. 그렇게 웃고 장난치고 점심을 먹는 등 일상 속에서 들은 노래들은 자연스레 우리의 의식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각의 곡들을 받아들이며 세대의 감수성을 형성해갔다.


그중에서도 "붉은 노을"은 다른 곡들보다 더 크고 많은 의미를 부여해도 될만한 곡이다. 우선 7080 시대를 호령했던 가수 이문세의 노래를 리메이크했기에 앞선 세대와 우리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을뿐더러 이문세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도 곡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일까. 전자음으로 다듬어진 밝고 활기찬 분위기에 착착 감기는 가사와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는 후렴구. 그리고 떼창을 유도하듯 "Ah! Ah! Ah!~"라고 외치는 끝맺음까지. 이 노래는 교실을 시끌벅적한 콘서트장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함께 따라부르다 보면 다른 노래를 떼창할 때의 벅참과는 또다른 벅참이 느껴졌는데, 그건 유난히 더 뜨겁고 뭉클하고 아련한 것이었다.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그렇게 느껴진 건 아무래도 결국 가사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대를 관통하여 이어지는 가사.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얼핏 보면 슬픈 가사지만 신나는 리듬이 슬픔을 슬픔으로만 느끼지 않게 한다. 오히려 밝게 노래하는 곡이기에 우리는 이를 통해 슬픔을 승화시키는 방법을 어렴풋이 배워갔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강렬하게 외치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지만 붉게 타는 노을을 보며 기대를 낙관적으로 가지는 것. 어린 우리들이 그런 생각을 하며 노래를 듣진 않았겠지만 노래를 따라 부르며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런 감성을 자신에게 심어놓지는 않았을까. 그 어린 우리가 이제 청년이 되어 사회로 나온 2020년대. 취업난, 정치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맞이해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붉은 노을"의 감성이 읽히는 것 같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향수 젖은 노래들을 부르곤 한다. "붉은 노을"도 그중 하나다. 다 같이 일어나서 어깨동무를 하고 부르게 되는 노래. 비트가 마치 빛나는 종이 가루들을 휘날리게 하는 것 같다. 마이크를 공중에 높이 들고 다 같이 따라 부르면 쾌감과 아련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세월이 더 흘러도 "붉은 노을"은 우리 90년 대생들에게 노래방에서 하이라이트 곡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사랑했던 친구들의 얼굴, 시간들, 풍경들을 스쳐가게 하는 노래. 이제 우린 어른이고 옛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품고 노래를 따라부르며 외친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품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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