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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훈 Nov 12. 2021

우리는 자신만의 앨범을 채워가는 중

애피타이저


20세기 초, 앨범이라는 용어가 사진 뿐만 아니라 음악 분야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앞뒤로 음악을 4분치 가량 밖에 저장할 수 없었던 SP 레코드를 많은 양 휴대하기 위해 제작된 파일북이 사진첩 모양을 닮아 "앨범"이라 불린 게 시초였다. 사람들은 레코드를 모아 각자의 앨범을 팔짱에 끼고 다니거나 가방에 넣어 다녔다. 이후 SP 레코드에서 발전해 음원 저장 수단이 달라지면서 파일북은 거의 쓰지 않게 되었는데 앨범이라는 단어는 살아남아 여전히 쓰인다. 왜일까. 나는 그 이유를 음악이 사진과 닮았다는 점에서 찾았다.


음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장면이 존재한다. 길에서 음악을 듣거나 혹은 음악이 들릴 때, MT에서 음악을 틀 때, 영화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 등. 설령 눈을 감고 있더라도 그 장소에서 현재 눈을 감고 있는 장면은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음악은 경험과 함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인상적인 것들은 사진첩처럼 우리에게 간직된다. 음악과 동시에 간직된 경험은 언제든 음악을 다시 들으며 상기될 수도 있다.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눈앞의 사진 혹은 영상으로 복원이 가능하므로 우리는 저마다 그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앨범이라 스스로를 정의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그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 음악을 듣다가 종종 떠오르는 장면들, 혹은 회상하다가 종종 떠오르는 음악들은 좀처럼 내 삶에서 쉽게 묻어둘 수 없는 것이었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록은 내가 나름의 소중한 경험들을 했다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더불어 음악을 공유한 사람들과의 관계, 음악을 들을 당시 사회적 배경 등도 자연스레 글에 녹아드리라 생각한다. 즉 이 시리즈에서 특정 시절의 공동체적 감수성까지 포착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2000년대에 플로피 디스켓이나 CD를 쓰던 세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아빠의 방 서랍에 있던 CD 모음집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클래식곡, 동요, 날아라 슈퍼보드 OST, 7080 음악 등등 거기엔 아빠가 좋아하는 음악과 어린이였던 나를 위한 음악 CD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각각의 페이지에 CD가 하나씩 꽉 차있는 모습은 마치 한 시기의 사진이 꽉 차 있는 것과도 같은 충만함을 주었다. 아빠의 CD 모음집은 아빠의 인생과 함께한 음악들이 모인 앨범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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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가 도래하면서 CD 시장은 스트리밍 시장의 활성화로 인해 저물었고, 음악은 디지털 음원이라는 형식으로 빠르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짜거나 프로필 뮤직을 설정하고는 한다. 마치 라디오에서 테이프로 곡을 녹음해 믹스테잎을 만들듯이. 목적은 다양하다. 자신이 선택해 듣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싱글 단위의 음악 발매가 잦아진 시대가 되었지만 우린 여전히 자신만의 앨범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리즈는 나의 플레이 리스트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플레이 리스트도 각각 테마를 가지던데 여기에는 내 이름을 붙여도 될 것이다.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음악들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처음에는 평론으로 시리즈를 연재해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평론은 이미 많은 도서나 웹진에서 접할 수 있으므로 어떻게하면 나만의 차별화된 플레이 리스트 북을 만들지 생각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나의 경험을 더 드러내 보자는 것이다. 일반적인 평론이 음악 이야기를 주로 삼는다면, 이 시리즈에서는 내 경험의 지분이 반 정도 되려나? 어쩌면 더 주가 되어있다고 해도 되겠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는 음악 도서라기보다는 음악을 소재로 한 나의 자서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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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를 알아갈 때 좋아하는 음악을 묻고는 한다. 우리 모두 시기별로 좋아했던 음악이 있을 것이고, 그 음악에 관한 자신만의 의견이 있을 것이며, 그 음악으로 대변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음악은 아무래도 상대방의 "좋아하는 곡이 뭐야?"라는 질문에 처음으로 떠오를 확률이 높다. 그건 플레이리스트가 이미 각자의 무의식중에 만들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좋아하는 음악들을 나누는 순간이 영혼의 인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소통이라 부르고도 싶다. 함께 앨범을 펼치고 그때 그랬고, 이런 음악이 있었고, 혹시 안다면 어땠는지?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지? 이야기해 보자는 나의 이 발신을.



* <음악과 경험>은 비정기연재로 진행됩니다. 그외 다양한 글들은 https://blog.naver.com/kimjhabo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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