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자아도취
작년 12월 개봉된 <신과 함께: 죄와 벌>은 누적 관객수 144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개봉작 2위에 등극했습니다.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첫 천만 영화이자 <미스터 고>로 주춤했던 김용화 감독의 부활이었죠. 워낙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탓에 1편과 2편을 동시에 촬영하는 도박을 걸었고, 그 덕에 속편 <인과 연>이 불과 7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1편 마지막에 등장했던 마동석이 차태현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죠.
이제 한 명만 더 환생시키면 천 년의 노동을 끝내고 환생할 수 있게 된 세 차사들. 그런데 그들의 리더인 강림은 원귀가 되어 이승에서 난리를 피운 수홍을 그들의 마지막 망자로 선택하죠. 저승법에 따라 원귀는 소멸이 되어야 하지만, 강림은 수홍의 억울한 죽음을 주장하며 무려 자신의 환생을 건 도박을 시도합니다. 이에 염라대왕은 이승에서 성주신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는 한 노인을 데리고 오는 조건으로 제안을 수락하고, 덕춘과 해원맥이 이승으로 올라가며 마지막 재판을 둔 분업이 시작됩니다.
1편 <죄와 벌>은 <신과 함께> 시리즈의 세계관을 소개하는 영화였습니다. 등장하는 모든 장소와 무대, 인물들을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설명하는 자리였죠. 일곱 개의 지옥과 차사들, 염라대왕을 비롯한 대왕들 등 세계관의 구성 요소들을 구경하는 재미를 기본적으로 포함했습니다. 거기에 주인공 김자홍의 환생이 걸린 재판과 이승에서 밝혀지는 김수홍의 죽음, 어머니의 모성애가 기승전결이 되었구요.
<죄와 벌>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인과 연>은 이야기의 줄기를 크게 두 개로 나눕니다. 1편에도 등장했던 노인 허춘삼과 그의 성주신을 찾아간 해원맥과 덕춘이 하나, 김수홍을 데리고 그의 억울한 죽음을 증명하겠다고 나선 강림이 나머지 하나죠. 전자에서는 천 살을 넘게 먹은 성주신 덕에 밝혀지는 강림과 덕춘, 해원맥의 과거사가 더해집니다.
동시 촬영된 영화답게, <인과 연>은 <죄와 벌>의 모든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심지어 밑돕니다. 어디서부터 짚어야 할지 모를, 총체적 난관의 종합선물세트입니다. 1편이 신파의 끝이었다면 2편은 자아도취의 끝입니다. 도대체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를 유머 코드부터 감정과 공감 능력을 상실한 듯 과장되어 있는 캐릭터들의 행동까지, 전제에 불과한 오류들은 여전합니다.
만들어 놓고 보니 140분이 된 것이 아니라 140분을 선언해 놓고 채워나간 것 같습니다. 했던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나왔던 장면을 의미없이 되풀이합니다. 단적인 예로 중요한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는 극적 순간을, 관객들은 이미 눈치채고도 남았을 힌트를 죄다 던지고도 수십 초 이상 지속하며 긴장을 흩뜨립니다. 영화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제작사의 CG 능력을 뽐내기 위한 장면들이 범람합니다. 1편의 고양이와 소처럼 사슴이 나오고 호랑이가 나오다가 기어이 상식을 파괴하고 헛웃음을 터뜨리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눈물샘에 날리는 한 방은 무조건 미안한 청각장애 어머니와 못난 아들 대신 세상에서 제일 명랑한 철거민 아이와 노인이 가져갔습니다. 영화가 관객들을 웃기려고 할 때, 혹은 울리려고 할 때 써먹기 너무나도 쉬운 조합입니다. 개성은 사치입니다. 심지어 웃기겠다는 욕심으로 캐릭터를 망가뜨립니다. 억 단위의 보상금을 받았음에도 버티는 사람은 더 이상 불쌍하지 않고, 그 돈을 제 손으로 날린 일은 전혀 웃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걸 불쌍하게, 그리고 우습게 묘사합니다.
마동석의 성주신은 오로지 오래 살아서 주인공 삼차사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에 의존한 캐릭터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30분이면 끝날 이야기를 몇 날 며칠에 걸쳐서 해 주며 불필요한 갈등을 빚습니다. 성주신이 없었더라도 우리의 마음 약한 차사들은 춘삼을 데려가지 못했을 것이고, 이승에서의 사건들은 더욱 매끄럽게 진행되었을 모양새입니다.
밝혀지는 해원맥과 덕춘의 과거 또한 춘삼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따져 보면 불쌍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인물이 불쌍하며 정의로운 인물로 둔갑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반전에 취해 아둔한 지점까지 다다릅니다. 모든 일에 '인과 연'이 있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인물 관계도를 제멋대로 주무릅니다. 한 번의 긴 호흡으로 가져갔어도 약했을 효과를 십수 개의 회상 조각으로 나누어 어떻게든 극적으로 내놓으려 애를 씁니다.
강림과 수홍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밝혀 도와 주겠다는 강림에게 계속해서 의심과 시비를 거두지 않으며 투덜대는 수홍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단순했던 자홍의 정반대 지점에 있습니다. 시종일관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것마냥 행동합니다. 굳이 지옥들을 하나하나 다시 건너며 러닝타임을 때우고, 변호는커녕 기초적인 사실관계 확인으로 판결이 뒤집히는 재판은 대왕들과 판관들의 무능함을 1편에 이어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이제는 영화의 전제조차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영화에 따르면 그 귀하다는 '귀인'은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합니다. 정의롭게 살다가 죽은 사람, 그리고 수명에 맞지 않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죠. <인과 연>의 논리대로라면 불의의 사고로 죽은 사람은 모두 후자에 해당해 귀인이 됩니다. 1편 김자홍이 임진왜란 논개 이후 첫 귀인이라더니, 저 조건이면 저승이 귀인으로 미어터져야 정상입니다.
자기모순의 오류는 영화의 핵심 주제와도 이어집니다. 성주신의 대단한 가르침은 '나쁜 상황이 있을 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로 귀결됩니다.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을 심판해서 처벌하는 일곱 개의 '지옥'을 다룬 영화의 교훈입니다. 오로지 주인공들의 행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맞춘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화가 지나가는 동안에도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책임지지 못할 속 편한 소리입니다.
무거운 걸 가볍게 다루고 가벼운 걸 무겁게 다룹니다. 인물과 사건은 지나치게 어둡거나 지나치게 밝습니다. 적당한 것이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뿌리깊은 동기를 밝힌 뒤에도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언급한 유머 역시 1편에서 김자홍의 선행을 들은 초강대왕이 갑자기 박수를 치며 김자홍 동상 세우자며 오만 호들갑을 떠는 수준의 식은땀 개그가 한계입니다.
어지럽게 교차되던 이승, 저승, 과거의 이야기가 한 곳에서 매듭지어지는 마지막 재판을 제외하면 내세울 요소도 드뭅니다. 조금씩 드러나고 얽히던 인물 간의 관계와 갈등이 종결되고, 쿠키 영상까지 이르러 모든 의문이 풀리며 완전한 결말을 완성하죠. 그러나 이전까지의 여정이 지나치게 힘겹고 산만했던 탓에 폭발력은 미미합니다. 그럼에도 자아에 도취되어 한없이 진중합니다. 이미 확정되어 발표만 남겨 놓고 있다는 3편과 4편이 이제는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