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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30. 2018

<인랑> 리뷰

혼신의 겉치레


<인랑>
★★


 오시이 마모루의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인랑>입니다. 충무로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로나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등에 이르는 캐스팅으로나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죠. 예고편 공개와 함께 본토인 일본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구요. 외양만 보면 박훈정 감독의 <마녀>와 더불어 역시 워너브라더스이기에 가능했던 장르적 시도이기도 합니다. 



 남북한 정부가 통일 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후 강대국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고, 악화된 민생으로 바람 잘 날 없는 혼돈의 2029년.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가 등장하자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설립된 경찰조직 특기대가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합니다. 이에 입지가 줄어든 정보기관 공안부는 특기대를 무너뜨릴 음모를 꾸미고, 그 중심엔 과거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특기대 대원 임중경이 있습니다.

 사람 인에 이리 랑을 쓴 '인랑'은 포스터와 예고편에 묘사된 대로 '인간의 탈을 쓴 늑대'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엘리트 부대인 특기대 중에서도 소문으로만 떠도는 존재로, 인간의 탈을 썼다고 표현할 정도로 냉혹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고 하죠. 영화의 제목일 정도라면 인랑이라는 소재는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영화의 줄거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영화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줄기는 한 개, 많으면 두 개로 족합니다. 그런데 <인랑>의 줄기는 중구난방입니다. 여기저기서 뻗어나와 여기저기서 제멋대로 끊깁니다. 특기대와 공안의 권력 다툼, 임중경의 도주, 한상우의 추격, 인랑의 실체에 이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엉뚱하게도 임중경과 이윤희의 사랑입니다. 혼란하디 혼란한 세상에서 각자의 꿍꿍이를 안고 만났으나 첫눈에 반합니다.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동시에 둘을 제외한 모두는 뒤편으로 밀려납니다.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합니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거대한 세계관을 펼쳐 놓고 기껏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민망하기는 했는지, 첩보나 액션의 색을 덧씌우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질부터 원체 다른 까닭에 전혀 섞여들지 않습니다. 방금 전의 장면이 지금의 장면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의 연속입니다. '인간의 탈을 쓴 늑대'라는 번지르르한 문장은 예고편에서 무게 좀 잡는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감정 이입의 여지도 없습니다. 이 장면에서 충격을 받아야 하는 것 같은데 영문을 모릅니다.

 늘어놓은 설정들의 존재 이유도 설득하지 못합니다. 무대가 2029년 미래일 필요도, 주인공 일행이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특기대일 필요도 없습니다. 관객들이 인물들을 스스로 정의하고 이해할 여지도 주지 않습니다. 특기대, 공안부, 심지어 인랑에 이르기까지 오프닝 내레이션부터 그렇게 대단하고 비밀스러우며 잔혹하다더니, 그를 증명할 활약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은 채 오히려 나약하게 무너져내리는 광경이 반복됩니다. 그런 포장이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수십 수백 배의 존재감을 자랑한 영화 캐릭터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실제로 40kg에 달한다는 프로텍트 기어만큼이나 둔하고 거추장스러운 치장으로 가득합니다. 권력 다툼과 사랑놀음은 서로를 방해합니다. 한 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면 다른 한 쪽을 이토록 길게 보여주는 연출은 시간낭비입니다. 문어체 이상으로 딱딱하고 어색한 대사는 이질감을 배가합니다. 충분한 도입과 고조도 없이 결말만 한껏 극적인 양 포장해 내놓은들 물음표만 많아집니다. 인물과 사건 모두를 놓쳤습니다. 대담하디 대담했던 개봉 시기는 아무래도 명예로운 죽음을 위해서였던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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