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물려받아 가까스로 이어붙인
2001년부터 2007년에 걸쳐 제작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는 도둑질 영화의 교과서로 남았습니다. 자잘한 손기술부터 첨단 장비를 동원한 판까지 수법도 다양했고, 지금은 다시 모일래야 모일 수도 없을 배우들의 앙상블도 엄청났죠. 소재와 캐릭터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다채롭게 엮인 시너지는 이후에 제작된 수많은 도둑질 영화들이 따라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시리즈가 <오션스 8>로 돌아왔으니, 솟구치는 기대는 당연했죠.
전 애인의 배신으로 5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데비는 가석방되자마자 믿음직한 동료 루와 함께 새로운 작전을 계획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바로 50년 동안 금고 밖을 나선 적 없는 까르띠에의 1500억 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었죠. 계획 실행을 위해 미국 최대의 패션 행사 멧 갈라에 참석하는 톱스타 다프네 클루거를 노리고, 그렇게 디자이너, 보석 전문가, 야바위꾼, 해커까지 모인 전문가들이 힘을 모읍니다.
<오션스 일레븐> 특유의 색은 비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카메라만 따져 보아도 고정된 시점, 뜬금없어 보이지만 중요한 화면 확대와 축소, 젬베 소리 섞인 음악, 프레임이 상하좌우로 뒤집히는 화면 전환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 바닥에서 구를만큼 구른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가 풍기는 여유로움과 할 땐 해내는 실력, 표정만 보아도 속내를 파악하는 동료이기에 가능한 입담이 있죠. 멤버들 간의 소소한 웃음 코드와 골 때리는 전개도 한몫합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에게서 메가폰을 넘겨받은 개리 로스는 <오션스> 시리즈의 향기를 풍기려 무던히 노력합니다. 최소한 카메라를 이용한 기술적인 부분에선 공을 들인 듯 싶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지금껏 수많은 영화들이 <오션스 일레븐>의 후계자를 표방하며 도전에 나섰으나 실패했습니다. 출연진을 완전히 물갈이한 <오션스 8>은 가만히 앉아 물려받은 그들의 유산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사건부터 어설픕니다. 무려 5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던 1500억 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걸린 작업임에도 일이 지나치게 수월하게 풀립니다. 물건의 액수는 사건의 규모와 맹목적으로 비례하지 않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봉착하는 난관은 난관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구멍도 많고 오류도 많지만 주인공 일행의 운과 엑스트라들의 저능함(...)에 많은 부분을 기댄 채 억지로 나아갑니다.
인물 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편의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는 훌륭한 리더였음에도 종종 카리스마를 벗어던지며 캐릭터의 매력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신하는 위치의 산드라 블록과 케이트 블란쳇은 시종일관 무게 잡기에 급급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리더'라는 지위에 취해 그 이상의 개성을 내지 않습니다. 멤버들 역시 각자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데 넋이 나가 소위 '케미'를 낼 여력이 없습니다.
마치 사건에 엮인 모든 인물들이 지금 영화를 찍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 같습니다. 주인공 일행의 작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공동의 목표인 것처럼 보입니다. 주인공들은 그걸 믿고 별다른 숙고 없이 수를 강행하고, 경비원부터 전 애인에 이르는 대립 세력은 그들의 움직임을 일부러 피해 하나씩 스러집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흘리는 3부작과의 연결점은 시리즈를 어떻게든 이어나가겠다는 고집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제목에 '오션스'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왕년의 영웅들 소식을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평범한 도둑질 영화 이상의 포장을 하기 어렵습니다.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수 싸움이나 계획이 틀어질까 식은땀 흘리는 긴장도 미미합니다. 포스터를 꽉 채우는 배우들의 면면만이 나머지를 지탱합니다. 3부작이 마무리된지도 10년이 넘었으니, 차라리 시리즈 입문작으로 여기는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맷 데이먼이 3부작의 라이너스 칼드웰 역으로 특별 카메오 출연을 했다는 기사와 인터뷰를 보았는데, 아마 통편집된 모양입니다. 멧 갈라에서 1초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지나간 카메오들까지 대부분 알아보았음에도 보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