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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31. 2019

<더 킹: 헨리 5세> 리뷰

왕도의 왕도


<더 킹: 헨리 5세>

(The King)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단박에 전 세계 팬들을 양성한(...) 티모시 샬라메의 신작, <더 킹>입니다. 지난 부산영화제 때 함께 출연한 조엘 에저튼과 함께 내한하며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했죠. 2017년 <워 머신>으로 넷플릭스와 인연이 있었던 데이빗 미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두 주연 외에도 벤 멘델손, 숀 해리스, 로버트 패틴슨, 릴리 로즈 뎁 등 익숙한 얼굴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폭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평생 원치 않았던 왕좌의 후계자가 된 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술과 여자에 찌들어 살던 탕아를 반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참에 기 한 번 펴 보고 싶은 대신들과 옆 나라의 국왕들은 기다렸다는 듯 잉글랜드의 콧대를 꺾으려 하죠. 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평화와 화합의 시대를 열고 싶은 할은 서서히 자신만의 통치를 시작하려 합니다.


 실존했던 인물의 이야기이자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더 킹>은 왕의 자리에 갓 올라 역사적인 아쟁쿠르 전투를 치러내는 헨리 5세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수많은 동종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기본적으로는 '정치고 나발이고 다 싫어서 궁을 떠났다가 어쩔 수 없이 왕이 되어 성군으로 성장하는 왕자' 설정에 충실하죠. 성장담과 정치 드라마는 물론 전투와 전쟁까지 아우를 수 있는 조합입니다.



 이제는 두툼한 털옷을 입은 인물들이 철이나 나무로 된 의자에 앉아 있는 광경만 봐도 <왕좌의 게임>이 떠오릅니다. 일곱 번째 시즌으로 끝을 맺으며(8이요? 아직 안 나왔는데요?) 이후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게 서사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각자의 생각을 품은 정치권자들의 대화부터 평야에서 벌어지는 전투까지, <더 킹> 역시 곳곳에 그들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베테랑 배우들 가운데 티모시 샬라메는 향락에 찌든 소년부터 갓 피어나는 야망을 품은 젊은 왕에 이르는 캐릭터를 상당히 준수하게 연기해냅니다. 역시 아직 이런 역할을 맡기엔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 쉬운 장면과 대사까지도 기대 이상의 몰입을 보장하죠. 이렇게 중심이 잘 잡혀 있으니 조엘 에저튼, 숀 해리스, 로버트 패틴슨에 이르는 조연들과의 시너지도 대단하구요.


 동료, 신하, 적으로 만난 이 세 명의 조연들은 마치 책의 한 장(章)을 담당하듯 각자의 방식으로 할이라는 캐릭터의 꺼풀을 하나씩 드러냅니다. 완전히 같은 내용의 대화도 서로 다른 양상과 결과를 보이며 모두의 개성을 끌어올리죠. 한편으로는 그만큼 도구적으로 사용된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실제로 항상 할의 곁에 있는 사람들치고는 막상 서로와의 시너지가 전무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준비되지 않았던 사람이 역경과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하기엔 다소 시시하달까요. 이 시대의 왕이라면 정치를 할 머리와 전투를 할 몸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텐데, 그에 도사급으로 통달한 아군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 덕에 부드러운 성장 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주인공인 할 역시 치기 어린 어리석은 소년과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듯한 왕자를 들쑥날쑥 오가는 듯한 순간이 더러 있습니다. 대신들 앞에서 문학 작품의 문장으로 써도 손색없을 달변을 자랑하다가도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흥분하는 모습이 번갈아 나오는 식이죠. 마치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역할을 공유하는 형제 캐릭터를 한 명에게 몰아 준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더 킹>은 모범적으로 전형적인 캐릭터들과 훌륭한 전쟁 씬 등, 이 바닥 영화가 갖추어야 할 재미 요소들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전부 차치하고서라도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영화이기도 하구요. 넷플릭스 공개 예정인 작품이긴 하지만, 은근히 스케일이 있는 편이라 지난 22일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극장 관람이 훨씬 훌륭한 선택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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