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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01. 2019

<닥터 슬립> 리뷰

빛이 있으라


<닥터 슬립>

(Doctor Sleep)

★★★


 <샤이닝>이 돌아왔습니다. 스탠리 큐브릭과 잭 니콜슨의 협업으로 영화사의 고전이 되었고, 가장 최근만 해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주인공이 거쳐 가는 세 개의 스테이지 중 하나로 등장한 영화죠. <위자>, <오큘러스>, <제랄드의 게임>의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완 맥그리거와 레베카 퍼거슨이 주연을 맡은 이번 <닥터 슬립>은 바로 그 <샤이닝>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남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알콜 중독자가 되어 밑바닥을 전전하고 있는 대니. 마음 굳게 먹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 그는 '샤이닝'이라 부르는 자신의 능력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안정을 돕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보다 강력한 샤이닝 능력을 지닌 한 소녀와 정신이 연결되고, 그와 동시에 자신과 소녀를 포함한 능력자들을 사냥하는 집단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1980년 영화 <샤이닝>은 분명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지만, 스탠리 큐브릭은 원작의 뼈대만을 빌렸습니다. 때문에 소설과 영화는 기본적인 장르와 방향성부터 다르다고 보아도 무방하죠. 이번 <닥터 슬립>에서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샤이닝'이라는 초능력은 소설 <샤이닝>에서도 꽤 중요하게 다루어졌지만, 영화 <샤이닝>은 능력이나 그 소유자인 대니보다는 아버지인 잭의 내면에 집중했습니다.



 때문에 <닥터 슬립>은 소설 <샤이닝>의 공식적인 속편이지만, 영화 <샤이닝>의 직접적인 속편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살짝 애매합니다.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숨기거나 아직 알지 못하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고, 그런 초능력자들을 사냥하며 영생을 추구하는 또 다른 초능력자 집단이 등장하죠.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미스터리보다는 소위 '능력자 배틀물'이라 부르는 장르라고 보아야 맞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화 <샤이닝>을 애써 지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소설판과 영화판 모두의 속편을 지향하며 사이의 균형을 찾아나섭니다. 그러면서도 <닥터 슬립>이라는 독립된 영화의 재미를 찾아내려 합니다. 그 결과 소설 <샤이닝>이나 영화 <샤이닝>을 둘 다 보지 않아도 즐길 수 있지만, 각각의 내용과 그 둘의 차이 등 아는 만큼 재미를 더하는 요소들도 곳곳에서 발견되죠.



 <닥터 슬립>은 언급한 대로 '초능력자를 사냥하는 또 다른 초능력자들'이라는 소재를 꽤나 전형적으로 활용합니다. 예전엔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냥꾼들이 갈수록 굶주리며 월척을 갈망하던 차, 누구도 본 적 없을 정도로 강한 아이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죠. 대니는 아직 꼬마에 불과한 아이를 지키는 유일한 능력자이자 어른이 되어 자신의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분위기는 시종 어둡고, 일부 장면의 수위는 15세 관람가라는 등급이 의심스럽습니다. 도대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은 공포 장르로 제작되었다는 <엑스맨: 뉴 뮤턴트>가 대강 이 느낌이려나 싶습니다.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에피소드를 반복하는 초중반부의 느린 호흡은 152분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의 독으로 작용합니다. 시작부터 공포로 몰아치다가 어느새 판타지로 전환되는 구성이라 일찍 지치면 후반부 집중이 어렵기도 하죠.


 하지만 기승전결 모두 각자의 매력 포인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초중반부는 레베카 퍼거슨을 주연으로 한 소설 <샤이닝>의 속편, 중후반부는 이완 맥그리거를 주연으로 한 영화 <샤이닝>의 속편이죠. 보통은 상업성을 따지며 영화의 수위와 완성도는 반비례 관계가 되곤 하지만, 이처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소수의 관객층을 존중하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닥터 슬립>을 보려고 <샤이닝>을 읽거나 감상하지 않아도 무관합니다. 오히려 15세 관람가라는 등급 판정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만 같죠. 텔레파시를 사용하는 이완 맥그리거의 모습에서는 대니 토렌스에 앞서 오비완 케노비가 떠오르고(!), 레베카 퍼거슨은 <왕이 될 아이>와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의 수치를 견디고 마침내 제대로 된 악역을 만났습니다. 최소한 원작자 스티븐 킹은 <샤이닝>보다는 <닥터 슬립> 쪽을 훨씬 좋아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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