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Nov 05. 2019

<신의 한 수: 귀수편> 리뷰

과몰입의 천지대패


<신의 한 수: 귀수편>

★☆


 2014년 개봉되어 350만 관객을 동원했던 <신의 한 수>가 5년만에 돌아왔습니다. 1편의 엔딩 크레딧에서 영화의 진짜 제목을 <신의 한 수: 사활편>이라 밝히며 속편의 가능성을 밝혀 두었더랬죠. 그에 이어지는 이번 <귀수편>은 리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권상우, 김희원, 김성균, 허성태, 우도환, 유선, 정인겸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속편임에도 불구하고 전편의 출연진과는 교집합이 없네요.


 불우한 어린 시절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누나마저 잃고 세상에 내던져진 한 아이. 그런 그의 타고난 바둑 재능을 알아본 사람의 손에 세상이 주목할 실력자로 거듭나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엔 세상을 향한 복수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준비를 끝낸 그는 자신을 사지로 내몬 냉혹한 내기바둑판으로 뛰어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름깨나 날린다는 자들과 죽음의 대결을 펼치기 시작하죠.


 <타짜>의 흥행 승부와 도박을 결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재능을 타고난 주인공과 캐릭터 확실한 악역을 끝판왕으로 설정해 양산되었죠. 하지만 그 누구도 <타짜> 이상의 결과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타짜>의 속편들도 이 운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타짜> 1편의 완성도가 높다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대부분의 동종 영화들이 아무 고민도 없이 제작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일단 이 승부의 종류와 규칙이 명징해야 합니다. 남녀노소 모두 이미 알고 있거나, 어렵지 않아서 금방 이해할 수 있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기본적인 보는 재미가 없습니다. 대부분은 영화가 구구절절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 탓에 이를 과감히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이 쪽이 '과감함'으로 용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최근 <타짜: 원 아이드 잭>은 여기서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극중 등장인물들을 포함한 모두가 이에 승복해야 합니다. <신의 한 수> 1편은 여기서 실패했습니다. 지자마자 판 엎고 싸울 거면 처음부터 싸우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오죠. 마지막으로 여기에 사활을 거는 그림이 우습지 않아야 합니다. <챔피언>은 여기서 실패했습니다. 팔씨름을 하는데 유리조각을 바닥에 깔아두고 지는 사람 팔을 아작내는 광경은 무서운 게 아니라 어이가 없습니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는 순간 승부도 도박도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 종목이나 끌어와서 돈 걸고 여차하면 두들겨 패는 공식이 성립되는 탓이죠.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이 모든 법칙을 위배했습니다. 승부보다는 그 결과로 움직이는 캐릭터들에 집중하고 집착합니다. 관객들은 바둑판이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목이든 알까기든 달라질 게 없습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주먹다짐은 전편에서 지적되었음에도 여전하죠. 목숨을 걸겠답시고 기찻길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승부는 대담하기보다는 우습습니다.


 게다가 슬프게도 이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과몰입입니다. 영화는 마치 바둑이 세상의 유일한 규칙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대화부터 복수까지 모든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바둑이 등장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성을 놓은 것만 같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특수한 바둑판을 만들어내고 진 사람을 용암에 던져넣는다니, 공기놀이를 하는데 갑자기 못 받으면 터지는 공깃돌을 꺼내드는 꼴입니다.



 연출하고픈 장면만 있을 뿐, 그를 논리적으로 이어붙일 방법은 생각해내지 못한 영화들이 저지르는 아주 흔한 오류입니다. 시각적으로는 정성을 들인 것이 분명하고 실험적이면서도 신선하지만, 앞뒤 혹은 소재와의 연결성은 깨끗하게 무시하는 것이죠. 1편의 냉동고 씬이 좋은 예이자 나쁜 예가 되겠습니다. 이번 <귀수편>은 거기에서 자극과 분량 모두를 끌어올렸구요.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명대사가 아니면 입조차 떼지 않겠다는 결의라도 맺었는지, 필요 이상의 비장함으로 기본적인 톤부터 잡지 못합니다. 게다가 주인공과 메인 악역 사이의 일대기를 제외하면 모든 조연과의, 혹은 조연 간의 이야기는 러닝타임과 영화 수위의 사족에 불과하구요. 이처럼 각본, 연출, 대사 등 전 영역에 포진한 단점들은 부정적인 시너지를 내며 서로를 반복하고 연장합니다.



 하나같이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은 그 방향성마저 똑같아서 누구도 돋보이지 않습니다. 부릅뜬 눈과 끔찍한 말버릇만 있으면 바둑을 알건 모르건 누구든 <귀수편>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바둑이라는 소재의 잠재력을 논하기도 전, 주인공을 한 명의 사람으로 설득하는 데부터 실패했죠. 음식 비유는 흔해서 딱히 선호하지 않지만, 불도 물도 없이 스프만 잔뜩 뿌려 입 안을 헤집는 라면이 떠오르는 영화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닥터 슬립>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