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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07. 2019

<블랙머니> 리뷰

열혈만능주의


<블랙머니>

★★★


 2012년 <남영동1985> 이후 직접 연출한 작품으로는 7년만에 돌아온 정지영 감독의 신작, <블랙머니>입니다. 2019년에만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개봉시키고 있는 조진웅과 <극한직업>의 해를 즐기고 있는 이하늬가 주연을 맡았죠. 그 외에도 이경영, 강신일, 허성태, 최덕문, 조한철에 이르는 조연들부터 수많은 카메오들까지, 러닝타임 내내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서울지검에서 '막프로'라 불리며 검찰 내에서도 거침없이 막 나가기로 유명한 문제적 검사 양민혁.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조사를 담당했던 피의자가 자신을 성추행범으로 지목하며 자살하고, 평화롭던 나날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 내몰리죠.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내막을 파헤치던 그는 피의자가 대한은행 헐값 매각사건의 중요 증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자산가치 70조 은행이 1조 7천억에 넘어간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기 시작하죠.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검사/형사/변호사가 어느 날 우연히 한 사건에 연루됩니다. 평소처럼 당장 눈 앞의 불의를 참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돌진한 결과였지만, 파내려가다 보니 낌새가 좀 이상합니다. 걸려 있는 이름들도 상상 이상으로 크고, 어느새 주변에서는 스리슬쩍 자신을 지워내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죠. 명단을 쓰자면 끝도 없는 장르물의 모범적인 전개입니다.



 동종 영화들 가운데 <블랙머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실화라는 강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양민혁이나 김나리를 비롯한 주인공 캐릭터들은 영화의 전개와 각본을 위해 극적으로 창작되었지만, 중심 소재는 외환은행 론스타 매각 사건이죠. 고유명사들을 바꾸고 상상의 힘을 더해 7년이라는 세월과 생소함을 등에 업고 잊혀지려던 존재들을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꺼내올립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오락성과 상업 영화를 표방한 이상 의외로 '실화'가 갖는 힘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블랙머니>는 분명히 사회적 고발을 지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상의 인물들을 내세워 극의 강약을 조절하고 흥미를 이끌어내는 구조는 상업 영화에 가깝죠. 전작 <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1985>처럼 사실과 의견의 전달에 올인하는 접근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블랙머니>는 자신만의 개성을 확보했다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영화만 따져 보아도 그렇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죠. 넉살 좋게 눙치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결연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는 조진웅의 모습은 이제 익숙합니다. 과거의 불우한 기억을 딛고 맨바닥에서 검사까지 올라섰다는 성장담도 이제는 특별할 것이 없어졌구요.


 쇼핑몰 모델과 다를 게 없는 이하늬의 김나리 쪽은 더욱 심각합니다. 빵빵하디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 엘리트 코스를 밟아 승승장구한 캐릭터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들, 제 3자들 중 그 과정과 결과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초중반부엔 선악의 경계를 오가며 개성을 보이는 것 같더니, 후반부에 접어들며 조연도 관찰자도 아닌 영역으로 흐지부지 무너지죠. 



 주인공들의 행보와 기승전결의 전진을 돕는 조연들이야 그렇다쳐도, 아끼고 아껴 딱 두 명만 내세운 주연들 중 극을 새롭게 휘어잡는 인물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사건의 전달을 목표로 한 영화가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고, 그 결과가 시원찮은 탓에 어느 쪽으로도 뚜렷하게 만족할 수 없는 작품이 되어 버렸네요. 기본적인 추리와 해결의 흥미는 갖고 있으나, 여러모로 그에 그쳐서는 안 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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