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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리뷰

공들인 작품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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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


<범죄와의 전쟁>으로 주목받는 감독 반열에 올랐던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입니다. <군도: 민란의 시대> 이후 4년만에 돌아왔죠. 당초 주인공의 이름을 따라 <흑금성>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되었다가 가제였던 <공작>이 공식 제목으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황정민, 조진웅, 이성민, 주지훈 등 충무로 흥행작들에서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들이 다시 뭉쳤습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공개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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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3년,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됩니다.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된 박석영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게 되죠. 대북 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북 고위 간부 리명운에게 접근한 흑금성은 수 년에 걸친 공작 끝에 그의 두터운 신뢰를 얻습니다. 하지만 남한에 불기 시작한 정권 교체의 바람은 그를 그 어느 때보다 위협하기 시작하죠.

소위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이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 소재들이 있습니다. 조폭, 검사, 부정부패 등에 이어 '북한'이 있죠. 소재가 소재인 만큼 첩보, 액션, 휴머니즘 등 다양한 범주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묶어낼 수 있습니다. 덕분에 할리우드의 CIA나 FBI, IMF(?) 요원 못지않은 볼거리를 선사하기도 하죠. 최근만 해도 <공조>, <강철비>, <은밀하게 위대하게>, <용의자> 등 목록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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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갈 줄 알았던 <공작>은 같음 속에서 다름을 추구합니다. 단적인 예로, <공작>엔 그 흔한 액션씬이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137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주먹질 한 번 하지 않고 총 한 방 쏘지 않습니다. 오로지 인물 간의 대화와 그것들이 빚어내는 상황만으로 긴장과 흐름을 가져갑니다. 한 마디의 말과 한 순간의 표정만으로 목숨이 오가는 무대에서 숨을 고르며 완주를 시도합니다.

그러면서도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만큼 호흡이 느리지도 않고, <모스트 원티드 맨>처럼 대기만성 구조도 아닙니다(두 영화가 나쁜 예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분류를 한다면 당연히 상업 영화에 속합니다. 관객들의 집중을 붙잡을 사건들을 꾸준히 꺼내놓습니다. 선과 악보다는 모두와 모두의 대결입니다. 각 인물들은 조직의 신념과 개인의 신념이 충돌한 상황에서 매 순간 자신의 명이 달린 선택에 직면합니다.

하나의 영화에 하나의 장르만을 담아내려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합니다. 지금껏 충무로의 첩보 영화에서 가족과 액션이라는 거대한 중심축 없이 탑을 쌓아올린 영화는 <공작>이 처음일 겁니다. 수십 장의 각본과 수십 분의 러닝타임이 보장되는 쉬운 길을 굳이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뻔한 것에 안심하고 흔한 것에 익숙해하는 흐름 속에서 발휘하는 뚝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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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메시지를 토대로 구성된 기승전결보다는 사건 순서를 따라가는 기록물이기도 합니다. 박석영과 리명운이라는 개인은 어느새 남과 북이라는 큰 그림이 되어 초점의 크기를 바꿉니다. 조금은 급작스러운 전환에 최학성(조진웅)이나 정무택(주지훈)은 한순간에 설 곳을 잃습니다. 그 정도의 결단이라면 최소한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혹은 보여주고 싶었던 그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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