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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19. 2019

<허슬러> 리뷰

불의의 사도들


<허슬러>

(Hustlers)

★★★


 2013년 <세상의 끝까지 21일>로 장편 데뷔했던 로렌 스카파리아 감독의 신작, <허슬러>입니다. 제니퍼 로페즈, 콘스탄스 우, 줄리아 스타일스, 릴리 라인하트, 카디 비(!) 등이 이름을 올렸죠. 본토엔 지난 9월 중순쯤 개봉되었고, 2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전 세계 흥행 수익 1억 5천만 달러에 육박하며 깜짝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어머니를 모시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우리의 주인공 데스티니. 짧은 시간에 비교적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는 스트리퍼의 세계에 뛰어든 그녀는 어느 날 마치 여왕처럼 무대를 지배하는 라모나를 만납니다. 첫눈에 서로의 가능성을 알아본 둘은 자신들의 장기를 하나의 사업으로 발전시키기로 결심하고, 돈은 많고 생각은 없는 양복쟁이 남정네들을 본격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하죠.


 <허슬러>는 2015년 뉴욕 매거진에 실렸던 실화 바탕 기사 <The Hustlers at Scores>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영화화 발표는 2016년 초에 이루어졌지만, 당시 제작사였던 안나푸르나 픽쳐스가 파산 절차를 밟으며 3년을 떠돌아야 했죠. 결국은 STX 엔터테인먼트의 구제를 받아 2019년 초에야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헤매는 3년 동안 달라진 영화계의 풍토와 흐름이 깜짝 흥행에도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영화는 대강 중반부까지 일종의 도둑질 영화 노선을 따릅니다. 팀이 꾸려져 있긴 하지만 명확한 역할 분담이 되어 있지 않고, 팀원 하나하나의 매력을 살리기보다는 두 주인공에게 집중하는 터라 '일종의'라는 수식을 붙였습니다. 어찌됐든 잘 빼입은 주인공들이 쉽고 멋지게 막대한 돈을 만지며 펑펑 쓰기까지 하는 광경엔 분명한 대리 만족이 존재하죠.


 영화는 꽤 오랫동안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나와서 모두가 한 번쯤 동경할 만한 화려한 삶을 누리지만, 이는 분명하고 심각한 범죄이기도 하죠. 이것을 단순히 오락적으로 통쾌하게 그려내려는지, 혹은 사필귀정이자 권선징악이라는 현실의 벽을 들이대려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조폭이나 범죄자들의 행태를 우정 내지는 의리로 묘사한 영화들도 많지만, <허슬러>는 실화라는 점에서 훨씬 조심스러운 접근을 필요로 합니다.


 이들을 멋지게, 동경의 대상으로 그리면 안 된다는 것을 영화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제니퍼 로페즈 본인마저도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에서는 극장을 나가고 싶었다고 하죠. 하지만 주인공들의 존재감을 한 번 제대로 보여주자고 결심한 순간만큼은 참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제니퍼 로페즈의 타고난 장악력을 애매하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이는 사실상 <허슬러>의 영혼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는 순간, 주인공들을 현실의 벽으로 끌어내리는 순간 더 이상의 흥미 포인트를 만들어내길 포기합니다. 주인공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맞이하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들은 아예 보여주지 않거나 일부 변명과 함께 마지못해 보여주죠. 2008년 월 스트리트의 금융 위기와 결부해 시대상을 담아낼 시도는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습니다.


 애초에 결혼 반지를 끼고 스트립 클럽에 오는 머저리들이 머저리들인 문제와 손님에게 마약을 먹여 긁어낸 돈으로 세상의 모든 사치를 부리는 문제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들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강조하며 이를 일종의 인과관계로 보이도록 유도하죠. 세상이 너무 매정해서 당장 쓸 돈도, 고개 들고 살아갈 자신감도 주지 않았으니 내가 나서서 복수를 하는 그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했다면 작품성을 챙기는 방향이 되었겠지만, 대담함과 조심스러움 사이의 애매함은 결국 발목을 잡습니다. 이 줄타기가 아슬아슬 흔들릴 때마다 데스티니와 라모나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은 각본 밖으로 우수수 떨어지고, 종국엔 두 주인공마저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 것인지 모를 어딘가로 빛을 잃죠. 그렇게 <허슬러>는 여러모로 <매직 마이크>의 하위호환에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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