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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18. 2019

<포드 V 페라리> 리뷰

7000만큼 기억해


<포드 V 페라리>

(Ford v Ferrari)

★★★☆


 <로건>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2년만에 돌아왔습니다. 무려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을 필두로 존 번탈, 조쉬 루카스, 노아 주프 등이 이름을 올린 <포드 V 페라리>죠. 당초 올해 6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크리스찬 베일을 아카데미 주자로 밀고 싶었는지 개봉일은 연말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디즈니의 인수 후에도 아직은 20세기 폭스 로고가 찍혀 있구요.



 1960년대, 판매 활로를 찾던 포드는 대담하게도 레이싱계 진출을 선언합니다. 시작으로 업계의 절대적 1위였던 페라리를 인수하려고 하지만, 계약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모욕까지 당한 헨리 포드 2세는 페라리를 박살낼 계획을 지시하죠. 포드는 르망 레이스 우승자 출신의 디자이너 캐롤 셸비를 영입하고, 셸비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열정과 실력으로는 빼놓을 수 없는 레이서 켄 마일스를 데려오죠. 불가능에 도전하는 두 사람의 질주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두 남자의 열정과 우정을 토대로 삼아 스포츠 드라마의 도전과 성취를 담아냈습니다. 레이싱 영화라고 하니 크리스 헴스워스와 다니엘 브륄의 <러시: 더 라이벌> 생각도 나고, 빼빼 마른 크리스찬 베일의 스포츠 드라마라고 하니 <파이터>도 떠오릅니다. 심지어 픽사 애니메이션 <카> 시리즈도 몇 군데 스쳐지나갑니다. 여러 장르의 다양한 장점들을 취사선택하기 딱 좋은 구성이죠.



 극장의 빵빵한 스피커로 부릉부릉 울려 대는 모터 소리에 객석까지 진동합니다. 셸비는 자동차의 RPM이 7000을 넘어가는 순간을 일종의 경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운전대도, 자동차도, 심지어는 도로마저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오직 앞을 향해 달릴 뿐인 바로 그 순간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철저한 준비 과정으로 그를 더욱 완벽하게 완성하려 노력하죠.


 제목까지 <포드 V 페라리>로 지으며 마치 포드와 페라리라는 두 기업의 대결에 주목할 것 같지만, 영화는 사실상 켄 마일스의 전기영화 노선을 따릅니다. 오랜 친구 셸비, 부인 몰리, 아들 피터 등 마일스를 중심으로 구성된 등장인물들은 중반부를 넘어서며 의도된 구도를 더욱 공고히 하죠. 사건에서 출발해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 뒤 처음부터 계획했던 인물에게 집중합니다.



 때문에 영화의 일관성은 부분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첫 장면으로 나온 셸비의 레이싱이나 의사 면담 씬 등은 한두 줄의 대화로 넘어갈 수 있었고, 존 번탈의 리 아이아코카는 조쉬 루카스의 레오 비비에게 완전히 묻히며 존재 의의를 상실합니다. 152분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을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절약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죠.


 이를 포함한 <포드 V 페라리>의 전반적인 아쉬움은 역설적이게도 켄 마일스의 완벽함에서 기인합니다. 마일스는 말 그대로 자동차 업계의 도사입니다. 어느 자동차든 한 번 몰아 보기만 하면 어느 부품이 어떻게 문제인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아냅니다. 정비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레이싱 능력은 더 완벽합니다. 차체의 장단점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주행까지 기막히게 해내니 말동무 정도 해 줄 것이 아니면 조력자 따위는 필요가 없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갈등 상황은 그토록 완벽한 마일스의 앞길을 조금이라도 가로막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아둔함과 멍청함에서 비롯됩니다. 마일스가 전적인 통제권을 가져가는 순간 영화의 기승전결이 나오질 않을 테니 적당한 악역이 필요하고, 자연스럽게 입만 열었다 하면 시시콜콜 트집이나 잡는 무지렁이 양복쟁이 캐릭터가 나올 수밖에 없죠.


 게다가 영화는 포드와 페라리의 경쟁 구도를 공정하게 그릴 생각도 딱히 없습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자기 할 일 열심히 한 덕에 업계 최고가 된 페라리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거만한 소리나 해 대는 이탈리아인으로 절하됩니다. 근성의 미국인 노동자가 잘못한 것도 없었던 러시아-일본 연합 악당을 때려부순 <리얼 스틸>과 비슷한 묘사죠. 몇몇 장면들을 보면 오히려 나쁜 짓을 하는 건 포드와 셸비 쪽인데도 말입니다.



 인물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사건의 활력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욕심을 부렸다기보다는 정확히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랐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포드 V 페라리>라는 제목이 이 기승전결을 묶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레이싱이라는 소재에 기대하는 볼거리도 충분하고, 켄 마일스라는 인물을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데에도 성공합니다. 특히 후자의 울림과 여운은 크리스찬 베일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성과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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