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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16. 2019

<시동> 리뷰

고장났다고 팰 줄만 알지


<시동>

★★☆


 2016년 <글로리데이>로 장편 데뷔한 최정열 감독이 3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박정민, 마동석, 정해인, 염정아, 최성은이 이름을 올린 <시동>이죠. 최초 공개된 포스터에서부터 원작과의 엄청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마동석 덕분에 화제가 되기도 했구요. CJ의 <백두산>과 롯데의 <천문> 사이에서 NEW는 틈새 시장을 노렸습니다.



 학교도 싫고 집도 싫고 공부는 더더욱 싫다며 엄마에게 1일 1싸다구를 버는 반항아 택일. 절친 상필은 빨리 돈이나 벌고 싶다며 사회로 뛰어들고, 이놈의 집구석에서 탈출한 택일은 우연히 찾은 중국집에서 남다른 포스의 주방장 거석이 형을 만납니다. 강렬한 첫 인사를 나누자마자 인생 최대 적수가 된 거석이 형과 함께 택일의 앞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험(?)이 기다리고 있죠.


 그래도 자기 앞가림은 할 줄 안다고 주장하는 시대의 청춘들과 '시동'이라는 제목이 만났으니,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은 짐작이 되시겠죠. 털털거리며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지만, 그래도 부릉부릉 어떻게 가기는 갑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두들겨 맞으며 바닥을 기어도 결국 할 건 다 해내는 우리들이니 중요한 것은 믿고 맡기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결과 정도는 무대를 꾸미는 단계에서부터 이렇게 짐작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 찾기가 더 어렵죠. 중요한 것은 과정입니다. 여기에 입히는 자신만의 색과 강점이 관건이죠. <시동>은 얼핏 시종 두들겨맞기는 하지만 적당히 유쾌하고 적당히 밝은 분위기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엄마한테 맞고 친구한테 맞아도 언제 그랬냐는 듯 했던 짓 또 하는 주인공의 뻔뻔함 덕분이죠.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이야기가 조금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두움의 깊이와 정도가 한계치를 넘어섭니다. 사랑의 매로 포장하려던 폭력의 수위는 가출 청소년을 건드리는 남정네들과 조직 폭력배들이 개입하며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갑니다. 그래도 자기들끼리 꽁냥거리던(?) 전반부와는 장르부터 다릅니다. 온도차만 놓고 보면 작년 말에 보았던 <스윙키즈> 생각도 왕왕 납니다.



 더욱 큰 문제는 각본이 이렇게 끌어올린 수위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청소년들의 세계를 어른들의 세계로 한껏 진지하게 확장시켜 놓고는 다시 청소년들의 방법으로 우습게 매듭짓습니다. 돈 안 갚는다고 다 때려부수는 사채업자한테 영혼의 싸대기를 날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지만, 그 사람들이 그토록 무서운 아저씨들이라는 것을 직전까지 강조해 놓고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고 하면 납득은 당연히 어렵죠.


 택일, 거석, 상필, 경주 등 각자의 이야기가 모두 따로 전개되는 것도 패착입니다. 운과 우연에 의존해서 이따금씩 강제로 만들어낸 연결점으로는 역부족이죠. 따져 보면 빨간 머리 경주는 각본에서 통째로 들어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에피소드 단위로 따지면 이렇게 편집 가능한 지점이 더욱 많습니다. 대부분은 앞서 언급한 과도한 폭력과 직결되는 것들이기도 하구요.



 시원하게 때릴 줄만 알고 치료할 줄은 모르는 영화입니다. 상처란 자고로 병원은커녕 반창고도 안 붙여 줘도 알아서 낫는다고 주장하는 영화죠. 피흘리며 중국집에 들어온 조폭은 마냥 선이고 돈 빌려달라던 사람들 빌려준 사채업자는 마냥 악이라는 주먹구구식 기준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커다란 기승전결과 그를 이루는 작은 기승전결 모두 중요한 단계 하나씩이 빠져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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