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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22. 2019

<백두산> 리뷰

터지기는 역부족


<백두산>

★★


 <천하장사 마돈나>와 <김씨 표류기>의 이해준 감독, <신과 함께>, <PMC>의 촬영을 담당했던 김병서 감독이 뭉쳤습니다. 국내의 대규모 CG 영화들을 전담하고 있는 덱스터 스튜디오와 함께 무려 260억 원의 제작비를 부은 <백두산>이죠. 프로젝트 크기에 걸맞게 하정우, 이병헌, 마동석, 전혜진, 수지 등 묵직한 이름들을 데려왔구요. 손익분기점이 730만 명이라고 하니 규모가 겨우 실감이 납니다.



 백두산의 폭발,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대규모 재난이 벌어집니다. 이에 백두산을 연구해 온 지질학 교수의 이론에 기반한 남북 공동 작전이 계획되고, 특전사 대위 조인창은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과 접선하게 되죠. 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준평의 움직임에 인창과 관계자들은 반복되는 위기를 맞이하고,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 시간마저 점점 가까워집니다.


 흥행하는 배우, 흥행하는 소재, 흥행하는 때깔, 흥행하는 전개까지, 흥행 공식의 모범적인 재료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감기>, <타워>, <해운대>, <판도라> 등 충무로의 재난 영화들은 대부분 평가나 인기 이상의 성적을 거둬 왔죠. <백두산>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최대한의 잠재력까지 끌어모아 할 만큼 다 해보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줄거리의 방향성은 단순합니다. 한반도를 초전박살낼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막는 것이죠. 백두산의 아래쪽에 폭발 예정인 마그마들이 고여 있는데, 그 옆 즈음을 크게 터뜨려 압력을 분산시키겠다는 계획입니다. 때문에 백두산의 아래쪽에 복잡하게 나 있는 탄광에 폭탄을 실어 나르려는 것이구요. 남한 입장에서는 폭탄도 없는데다가 백두산은 북한에 있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주변국들과의 협력 내지는 갈등이 불가피합니다.


 방향성은 단순하니 무작정 진지하게 직진하는 영화일 것 같지만, <백두산>의 분위기는 의외로 가벼운 편입니다. <PMC>보다는 <터널> 쪽에 가까운 하정우의 캐릭터 덕이 아주 크죠. 치는 대사마다 웃음의 함량이 기대 이상으로 높고, 이를 받아치는 이병헌 특유의 넉살이 맞물립니다. 이를 따라가려는 듯 영화의 전개도 절체절명의 재난이 눈앞에 있는 것치고는 유한 편이구요.



 얼핏 등장하는 머릿수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이지만, 영화는 이 한 명 한 명에게 각자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장면을 선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백두산 폭발을 막는다는 공동의 목표를 제외하면 모두 다른 각자의 분량을 챙겨 가죠. 때문에 폭발까지 몇 시간 남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만 수십 번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전개 속도가 꽤 느리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이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예상된 바대로 구구절절한 신파의 함량이 매우 높습니다. 불필요한 감정과 불필요한 장면이 만나 불필요한 캐릭터라는 결론이 나는 순간도 많은데, 이 모든 것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에 영화의 완성도가 무너지는 데 이르죠. 진지함과 능글맞음을 순간적으로도 자유자재로 오가는 이병헌의 연기만이 이를 간신히 틀어막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모두를 구원할 도움의 손길이 짠 나타나는 전개도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는데, <백두산>은 그런 전개를 사용하는 영화들 가운데에서도 특이한 단점과 시너지를 냅니다. 바로 특정한 상황들의 중간 장면이 빠져 있다는 것이죠. 인창의 아내인 지영이 다리 위에서 차를 타고 있다가 터진 댐의 물살과 충돌하는데, 충돌 직후 갑자기 지영이 물에서 헤엄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러지 않아도 개봉 직전까지 후반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고 하는데, 빡빡한 일정 탓에 아예 몇 장면은 버려 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백두산을 향해 멀찍이서 출발하자마자 폭발하는 화산을 향해 분노의 질주를 하는 장면이 이어지는 식이죠. 기술력을 뽐낼 만한 장면들만 한껏 공을 들여 보여주면 거기까지 어떻게 도달했는지는 모두가 잊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입니다.


 이처럼 각본 내적인 이유와 외적인 이유 모두 개연성의 붕괴를 향해 달립니다. 프로토타입이라서 한 번 타이머를 켜면 돌이킬 수 없다는 설명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폭발 반경이 몇 킬로미터에 달하는 폭탄을 고작 몇십 미터 가까이서 터뜨리겠다고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서울까지 무너져내리는 지진이 발생한 마당에 백두산 근처의 지하 탄광들이 멀쩡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죠.



 때깔에 혼신의 힘을 다한 재난 영화들이 재난 그 자체가 되는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구멍은 탄광처럼 숭숭 뚫려 있고 제작비는 화산재처럼 사방에서 흩날립니다. 온도가 상승했음을 표현하려고 작전실에서 갑자기 초콜릿을 꺼내 먹는 장면에서는 영화가 관객들을 아주 바보로 생각하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똑같은 이병헌 주연의 재난물로는 예전에 나왔던 CGV 4DX 광고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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