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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24. 2019

<천문: 하늘에 묻는다> 리뷰

지성과 감성의 두 별


<천문: 하늘에 묻는다>

★★★☆


 2016년 8월 <덕혜옹주> 이후 장편으로는 3년만에 돌아온 허진호 감독의 신작, <천문: 하늘에 묻는다>입니다. 하나하나가 묵직한 이름인 최민식과 한석규가 주연을 맡았고, 조연으로도 김홍파, 신구, 허준호, 김태우, 김원해, 임원희, 오광록, 윤제문 등이 이름을 올렸죠.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이후 다시 한 번 등장한 한석규의 세종대왕과 최민식의 장영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목하기엔 충분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 관노로 태어나 종 3품 대호군까지 오른 천재 과학자 장영실. 두 사람은 20년 동안 군신이자 벗으로 꿈을 함께하며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어내고, 하늘의 움직임을 읽고자 하는 원대한 소망에까지 다다릅니다. 하지만 장영실의 출신을 못마땅해하고 명의 눈치를 살피는 신하들의 반대에 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이 겹치며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하죠.


 대부분의 사극들은 특정한 '사건'에 초점을 맞춥니다.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다루었건,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했건, 괴수가 나타나고 좀비가 날뛰건 의외의 공통점이 되는 지점이죠. 다다르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개성과 내면을 드러내더라도 결국엔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할 '사건'의 존재감이 중요한 탓입니다. 



 <천문>은 다릅니다. 실제로 일어났다고 기록된 사건과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사건들이 영화의 기승전결에 차곡차곡 쌓여 있기는 하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이라는 인물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시대를 앞서고 신분을 뛰어넘은 둘의 우정이자 교감이죠.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이 소중함으로 바뀌고, 이내 그 소중함을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게 되는 과정과 결과를 다룹니다.


 이는 <천문>의 뚝심입니다. 영상으로 재현된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특별한 우정은 남모를 뿌듯함과 감탄을 선사합니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바로 그 익숙함이 낳는 새삼스러움이 분명히 존재하죠. 더 큰 선을 바라보는 외로운 싸움에서 마침내 만나게 된, 자신의 속뜻마저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는 '내 편'의 소중함은 많은 것을 초월한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 뚝심이 고집이라는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집중하다 보니, 이들과의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장면이나 소재는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딱 좋죠. 사극이라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권력욕에 눈이 먼 대신들의 권모술수가 대표적입니다. 절대선인 두 주인공을 빛내기 위해 별다른 목적 의식도 없이 딴지만 거는 것으로 비춰지기 딱 좋은데, 방해물 이상도 이하도 아님에도 각자 분량을 알뜰히 챙겨가는 통에 질리기가 쉽죠.


 둘의 관계에 집중했다는 말은 추가적으로 각자의 이야기에도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장영실 하면 으레 기대할 만한 발명품들의 향연은 아쉽게도 배제되어 있죠. 상식 선에서도 몇 개씩 튀어나오는 세기의 발명품들은 맛보기 식으로 스쳐지나갈 뿐, 등장하는 시점부터 이미 전제되어 있는 '세기의 발명가'보다는 세종의 신하이자 벗이라는 수식에 한껏 집중합니다. 



 특정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들의 기승전결이 뚜렷한 만큼, 그러지 않은 영화의 기승전결은 흐릿하기 마련입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라는 추상적인 것을 다루고 있으니 분명한 지향점이 없기도 합니다(다 보고 나면 '천문'이라는 제목이 아주 썩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보다 보면 우정과 브로맨스를 넘어 얼핏 퀴어의 영역을 넘보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천문>은 두 역사적 위인의 만남이라는 무게에 충실히 부응했고, 사극의 은하수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찾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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