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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29. 2019

<캣츠> 리뷰

강아지 선전물


<캣츠>

(Cats)

★☆


 <킹스 스피치>, <레미제라블>, <대니쉬 걸> 등 어느 장르에서 어떤 배우와 함께하더라도 모두를 만족시켰던 톰 후퍼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뮤지컬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는 무조건 들어갈 <캣츠>를 스크린으로 옮겼죠. 그것도 이드리스 엘바, 주디 덴치, 레벨 윌슨, 제니퍼 허드슨, 이안 맥켈런, 제임스 코든, 레이 윈스턴,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제이슨 데룰로, 무용수 프란체스카 헤이워드, 스티븐 맥레이 등 화려하디 화려한 이름들과 함께했습니다. 



 자신들만의 규칙 하에 밤거리를 활보하는 젤리클 고양이 무리에 어느 날 우리의 주인공 빅토리아가 합류합니다. 마침 1년에 단 하루, 젤리클 고양이들의 원로 '올드 듀터러노미'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고양이를 선택하는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죠. 그렇게 이름을 조금이라도 날렸다 싶은 고양이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놓기 시작하고, 뒷골목의 제왕 맥캐버티의 마수도 점점 가까워집니다.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못해도 유명해서 유명한 <캣츠>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거기에 뮤지컬 영화 하면 잔뼈가 굵은 톰 후퍼가 나섰고, 걸린 이름들도 엄청납니다. 개봉 몇 달 전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된 예고편들은 고양이들의 얼굴이 끔찍하다는 반응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뚜껑을 직접 열어 보자는 침착한 반응이 대다수였죠. 



 본격적인 폭탄은 본토에서 진행된 시사회 직후에 터졌습니다. 예고편에서 느꼈던 불안한 전조를 몇 배로 뻥튀기한 무시무시한 반응들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죠. 아카데미 감독상을 빼앗아야 한다느니, 이 영화는 강아지의 등장 이후 고양이에게 일어난 최악의 사건이라느니, 재앙 그 자체(CAT-astrophe)라느니, 주류 언론사들의 반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단어들이 쏟아졌죠.


 올해를 넘어 대한민국의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자전차왕 엄복동>도 개봉일 조조로 보았던 입장에선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뮤지컬 <캣츠>는 유명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대표곡인 'Memory'마저도 어디서 한 번 들어 본 곡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톰 후퍼 버전의 <캣츠>를 오롯이 하나의 영화로만 받아들이기엔 최적의 조건이었죠. 



 그렇게 관람한 이번 <캣츠>의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의식한, 무리하디 무리한 일정에서 기인합니다. 최소한 반 년은 더 공을 들여야 했던 준비 과정을 건너뛴 감독의 욕심이죠. 때문에 <캣츠>는 CG 개선판을 개봉 이후 배포해 상영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맞이했습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 그래픽 작업마저도 무시했으니 편집점 따위는 따질 여념도 없었겠지요.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등장인물들의 기괴한 외형입니다. 인간도 고양이도 아닌, 그 사이의 불쾌한 무언가가 난립합니다. 달려 있는 고양이 귀와 꼬리는 어설픈 CG로 움직이는 와중에 코와 손발은 사람의 것입니다. 옷을 입지 않은 고양이들의 맨몸은 매끈하게 빠진 것이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대화는 멀쩡하게 사람 말로 잘 하다가 그르릉대거나 액체를 핥아먹는 등 고양이 흉내를 냅니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쥐와 바퀴벌레 씬의 완성도는 웬만한 TV 광고보다도 못합니다. 이 정도의 미완성본을 상영하기로 결정한 것은 표를 구매한 관객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망각한 수준입니다. 새로 배포했다는 개선판은 등장인물들의 손발이 고양이의 것으로 바뀌어 있다는데, 이런 추태에도 <애드 아스트라>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등을 누르고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후보에 오른 것은 실로 모욕적이죠.


 하지만 사람은 적응합니다. 불쾌한 첫인상을 참아내면 그럭저럭 끝까지 볼 준비는 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각본은 충격적일 정도로 텅 비어 있습니다. 자기가 고양이들의 천국에 가야 한다며 한 마리씩 나와 자기소개와 인생사 털이를 겸한 노래를 한 곡씩 뽑는데, 노래 다음 노래 다음 노래가 나오면 슬슬 이러다 끝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현실이 됩니다.



 구성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캣츠>의 전개는 그 구성과 상극입니다. 여러 고양이들이 나와서 이런저런 사연들을 꺼내놓으며 자기가 가장 자격 있는 고양이임을 어필하는데, 관객들은 이 고양이들과 초면입니다. 한꺼번에 우르르 나와서 다 같은 모험을 겪은 뒤 한 마리가 선택되는 기승전결이면 모를까, 서로 다른 고양이들의 서로 다른 삶을 비교하기엔 모든 정보가 너무나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누가 어떻게 선택되든 상관이 없는 지경에 다다릅니다. 소개를 끝낸 고양이는 무대 뒤편으로 완전히 밀려나 다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습니다. 대충 마지막에 하는 고양이가 선택될 것이 뻔해집니다. 새 고양이가 하는 노래의 1절이 끝나면 노래의 호불호 견적도 나오겠다, 모든 것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들려줄 이야기조차 없는 주인공 빅토리아의 존재마저도 거슬리기에 이릅니다.


 누가 어떤 감정으로 승부하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뻔뻔하든 사악하든 슬프든 한마디로 알 바가 아닙니다.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홀로 과잉 연기를 펼치는 제니퍼 허드슨의 그리자벨라도 예외는 아니죠. 부족한 세계관 설명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젤리클 고양이는 도대체 무엇이고, 마술이 아닌 마법을 부리는 시점에서는 나사가 아주 크게 빠집니다.



 두 시간 내내 자기가 보통 고양이와는 다른, 유별나고 특별한 존재임을 강조한 고양이들만 주루룩 나오더니 갑자기 보통의 고양이들을 대표하는 일장연설이 튀어나옵니다. 이제 우리 고양이들을 아주 잘 알았으니 캐비어를 바치라고 합니다. 주변에 마법을 부리고 쥐와 바퀴벌레로 서커스를 꾸리는 고양이가 있으면 한 번 갖다 주겠습니다. 이 거만하고 건방진 태도는 캐릭터를 넘어 영화와 감독까지 관통해 영화의 모든 구성 요소를 '불쾌함'이라는 단어로 성황리에 매듭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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