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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an 04. 2020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리뷰

회심의 회생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Star Wars: The Rise of Skywalker)

★★★★


 세 편 단위로 끊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입니다. 국내에선 대부분의 국가보다 2주 늦게 개봉되며 기어이 해를 넘겨야 했죠. 라이언 존슨의 전편 <라스트 제다이> 이후 크게 분열된 팬들을 진정시키려 7편의 J.J. 에이브람스가 복귀했고, 주인공 데이지 리들리와 아담 드라이버부터 기술의 발전 덕에 돌아온 캐리 피셔까지 제작진 전원이 무탈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제는 정말 몇 남지 않은 저항군은 하루가 다르게 전의를 잃어 가고, 기세가 등등해진 퍼스트 오더는 모든 여력을 동원해 최후의 공격을 준비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레이는 레아의 뜻을 따라 수련에 매진하고, 포, 핀, 츄이, BB-8 등 든든한 동료들과 서로를 지키죠. 하지만 다크 사이드의 카일로 렌은 끊임없이 레이에게 손을 내밀고, 설상가상으로 과거의 절대악이 다시금 고개를 들며 모두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칩니다.


 스타워즈는 지금껏 어떤 시리즈도 나아가지 못한, 어쩌면 나아가지 않을 길을 걸어 왔습니다. 하나의 신드롬을 넘어 문화 그 자체가 될 정도로 덩치와 인기를 불리며 누구나 꿈꿀 영예를 마음껏 누렸지만, 어느새 그렇게 커진 덩치가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어 버렸죠. 같은 팬이라는 울타리 안에도 너무나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를 유지해 온 기간마저 세기를 넘어서며 이제는 맞춰 줄 눈높이도 셀 수가 없어졌습니다.



 제작사와 팬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시리즈의 색과 감독의 색까지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며 원년 팬들과 새로 유입될 팬이라는 전혀 다른 두 관객층도 고려해야 했죠. 에이브람스는 사실상 4편 <새로운 희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7편 <깨어난 포스>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했고, 작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간신히 깨뜨린 전 세계 흥행 수익 1위 기록이 성과를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라이언 존슨의 8편 <라스트 제다이>가 나타났습니다. 라이언 존슨은 새로운 시리즈 총괄 캐슬린 케네디와 함께 시리즈의 개혁을 꿈꿨습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성을 바탕으로 시리즈의 골자를 뜯어고쳤습니다. 포스는 더 이상 선택받은 사람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토록 거대한 공룡의 과감한 변신을 반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통 혹은 영혼에 손을 대서는 안 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라스트 제다이>의 흥행 성적은 전편의 반토막이 났습니다. 전편이 워낙 대단했기에 반토막난 성적도 준수했지만, 일단 후속편이기에 보러 간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죠. 이들은 <라스트 제다이>를 보고 시리즈의 미래를 포기했고, 그 후폭풍은 다음 영화였던 <한 솔로: 스타 워즈 스토리>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천하의 스타워즈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죠.


 아무리 자신이 옳고 팬들이 고집쟁이라는 신념이 있었어도 굽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라이언 존슨은 곧바로 하차했고, J.J. 에이브람스가 구원 투수이자 소방수로 투입되었습니다. 때문에 이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전편의 실수를 만회하는 동시에 계승하며 마무리하는, 누구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과제를 떠안은 영화였습니다. 문장 자체가 역설이라 보아도 무방한 임무였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에이브람스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 노력했다는 것이 군데군데 느껴집니다. 갖고 있는 재료들을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팬들이 조금이라도 실망했던 설정들의 재현이나 재발은 최소화했습니다. 이야기를 전진시키며 만나는 모든 분기점에서 어떻게든 균형추를 원래대로 돌리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볼거리를 잡고 주인공들을 성장시켰습니다. 디즈니 특유의 안정성으로 시리즈를 재무장시켰습니다.


 로즈와 핀의 깜찍한 모험이 한 갈래, 레이와 카일로 렌의 격돌이 또 다른 갈래였던 전편의 산만함은 사라졌습니다. 확실하고 단단한 하나의 방향으로 각본을 전진시키죠. 레이와 카일로 렌의 계속되는 만남은 파이널 오더와 저항군이 펼치는 최후의 전쟁과 서로 부드럽게 섞여듭니다. 누가 어떤 장면에서 무슨 행동을 하든 이야기는 같은 곳으로 나아갑니다. 



 시각적인 즐거움은 엄청납니다. 탁 트인 공간에 물이든 사람이든 우주선이든 무언가를 한가득 채워 화면 자체로 압도하는 연출이 주 무기가 됩니다. 비록 그 무대가 갖춰지기까지의 과정이나 그 안에서 펼쳐지는 상황의 양상을 설득력 있게 풀어가지는 못하지만, 소위 말하는 '뽕'을 채우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죠. 공간은 커다랗지만 막상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지점은 조그맣기에 일종의 눈속임으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 대 한 대마다 행성 파괴까지 가능한 초강력 무기를 탑재한 초거대 함선들이 수십 수백 대가 있는데, 주인공들은 작은 우주선 십수 대로 이들과 맞섭니다. 분명 광경 자체는 어마어마하지만, 애초에 상대도 되지 않아야 정상인 이 엄청난 함대를 어디서 났는고 하니 그냥 버려진 행성에서 뚝딱 만들어냈다고 나옵니다. 무지막지한 공간에서 주먹만한 물건을 찾거나 하는 장면도 레이가 포스로 감지했다며 대강 넘어가는 식이죠.



 이처럼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모든 재료들은 양날의 검이라는 특징을 지닙니다. 얼핏 훌륭하게 때운 것 같아도 막상 조금만 따져 보면 엉성한 눈속임인 것 같습니다. 분명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 창고에서 꺼내 왔다는데, 무언가를 새로이 만들 수가 없어서 변명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좋게 말하면 20세기 전작들의 추억이고, 나쁘게 말하면 유치한 대사나 연출도 왕왕 있습니다.


 7편부터 9편까지의 3부작 주인공은 분명 레이지만, 레이는 어쩔 수 없었던 시리즈의 급격한 방향 전환에 직격타를 맞은 캐릭터입니다. 8편에 이어 또 새로이 드러나는 레이의 과거를 보고 있자면 이 설정이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었는지, 혹은 전편의 시도를 어떻게든 세계관에 말이 되게 녹여내려 급조한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미 태생적인 능력으로 세계관 최강자 수준의 힘을 자랑해 놓은 터라 수습 범위가 아주 넓지는 않습니다.


 그 빈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카일로 렌입니다. 포와 핀마저 단순한 조연 정도로 등진 9편에서 유일하게 3부작을 관통하는 일관성을 지닌 캐릭터죠. 한 솔로와 레아 스카이워커의 아들이지만 스노크 밑에서 다크 사이드로 자라난 양면성을 오롯이 개인의 성장 재료로 사용하는 인물입니다. 매 선택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죠. 이번 9편 역시 카일로 렌의 그와 같은 개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구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대규모 전쟁을 진행시키면서 개인의 내면과 갈등을 다루고, 그 과정에선 팬들이 반길 것이라고 예상한 재료를 대량으로 사용하죠. 전편의 주장이자 실수를 만회하면서도 기존의 것들과 어떻게든 연결점을 형성하고, 영화의 스케일에도 충실하기 위한 선택이 줄을 잇습니다. 예상된 대로 흘러가는 것이 예상 외의 일이고,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예상된 일입니다. 


 덕분에 딱 하나 없는 것이라면 일관성입니다. 독립된 영화로 보아도, 전체적인 시리즈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신념과 목표에 따라 어떻게든 잘해 보려고 한 것이기에 누구 한 명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습니다. 원년 팬들의 실망이 부수적 피해로 따라온다는 것이 비극일 따름입니다. 이제는 정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탓이죠.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최근 3부작들 중 아마 가장 '대중적인' 영화일 겁니다. 이 쪽을 좋아했던 팬들과 저 쪽을 좋아했던 팬들, 그리고 시리즈를 전혀 모르는 채 고유명사들은 대충 귓등으로 흘릴 수 있는 관객들까지 모두 포용하는 영화죠. 실로 디즈니스러운 매듭입니다. 무려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으면서 마리당 한 입(...)씩은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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