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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an 21. 2020

<닥터 두리틀> 리뷰

낭비한 동물사전


<닥터 두리틀>

(Dolittle)

★★☆


 휴 로프팅 작가의 고전 아동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전면에 내세운 <닥터 두리틀>입니다. 정확히는 15부작 중 두 번째인 <둘리틀 박사의 바다 여행(The Voyages of Doctor Dolittle)>을 영상화한 작품이죠. <골드>의 스티븐 개건이 메가폰을 잡았고, 동물들 목소리로 톰 홀랜드, 라미 말렉, 존 시나, 엠마 톰슨, 쿠마일 난지아니, 옥타비아 스펜서, 레이프 파인즈, 셀레나 고메즈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동물들과 소통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닥터 두리틀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세상과 연을 끊은 채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친 다람쥐의 치료를 부탁하려는 소년 스터빈스와 영국 여왕의 진찰을 의뢰하려는 소녀 레이디 로즈가 굳게 잠겨 있던 두리틀의 저택에 입성하고, 그렇게 다시는 인간 세상에 발 들일 일 없을 줄 알았던 두리틀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죠.


 동물들과 말을 할 줄 아는 박사의 판타지 어드벤처입니다. 딱 봐도 전체관람가의 향내가 자욱하죠. 사람이 동물 말을 하든 동물이 사람 말을 하든, <나니아 연대기>, <황금 나침반> 등 종족을 뛰어넘은 대화 스킬(?)은 판타지 세계관의 기본 설정이기도 합니다. <닥터 두리틀>은 그 밑반찬을 메인으로 내세운 모험담이구요. 자연히 아주 큰 스케일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승전결도 아주 무난합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전설 혹은 헛소리로만 치부되던 미지의 열매를 찾아 떠나고, 일단 믿지는 않지만 설마 진짜로 찾아낼까 싶어 걱정하는 악당들이 그의 뒤를 쫓죠. 남녀노소 중에서도 정확히 아이들을 겨냥한 터라, 갈등의 형성과 해결 모두 귀엽고 깜찍한 수준입니다. 복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복선들도 교과서적으로 풀린 뒤 교과서적으로 회수되구요.


 진짜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어떤 인간이나 동물도 이렇다할 존재감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포스터를 꽉꽉 채우는 동물들은 누구도 주연 이상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습니다. 한 에피소드에 한 마리씩 나와 쓸모를 다하고 퇴장하는 식이죠. 이렇게 간단히 이루어질 성장이었다면 지금껏 저택에만 박혀 있던 것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 주인공인 스터빈스와 레이디 로즈는 단순히 아이들 관객이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대상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갈등 상황은 두리틀과 동물들이 도맡고 있기에, 각본에서 이 둘을 통째로 떼어내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죠. 수많은 동물들에 불필요한 인간 주인공들이 더해지면서, 오롯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어도 몇 퍼센트 부족했을 두리틀의 무게감마저 함량 미달인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이름값을 과신한 영화의 판단 착오에서 기인합니다. 원작은 두리틀이 동물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부터 찬찬히 다루며 누가 보아도 두리틀을 완전한 주인공 자리에 놓고 시작하지만, 영화의 출발은 주인공 스터빈스가 두리틀이라는 신비한 박사의 집을 찾아가는 지점입니다. 두리틀을 주인공으로 삼아야 하는 작품이 첫 단추부터 표류하니 중심이 잡히지 않는 셈이죠.



 그렇게 엄청난 이름값의 배우 덕에 생기는, 거의 유일할 수도 있었던 마지막 장점마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어린이 영화의 단조로움뿐이죠. 원작처럼 훌훌 읽어나가는 동화책이라면 모를까, <아쿠아맨>이나 <엑스맨: 아포칼립스>에 버금가는 1억 7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감당하기엔 품은 포부가 지나치게 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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