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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an 22. 2020

<해치지 않아> 리뷰

당황 대신 황당


<해치지 않아>

★★☆


 2010년 <이층의 악당>을 내놓았던 손재곤 감독이 10년만에 돌아왔습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안재홍, 강소라, 김성오, 박영규, 전여빈, 한예리가 이름을 올린 <해치지 않아>죠. 살짝 먼저 개봉한 <닥터 두리틀>이나 오늘 개봉한 <미스터 주: 사라진 VIP>까지, 어쩌다 한 번 보기도 드문 동물 영화들이 연달아 세 편씩이나 선을 보이며 뇌리에서 이리저리 섞이고 있네요.



 생계형 수습 변호사 태수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 위기의 동물원 동산 파크 회생 작전. 새 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손님은커녕 동물조차 없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에게 동물로 위장 근무를 하자는 기상천외한 제안을 합니다. 그렇게 북극곰, 사자, 고릴라, 나무늘보의 탈을 쓰고 출근하게 된 주인공 무리의 말도 안 되는 위장과 도전이 시작되죠.


 사람이 동물 탈을 쓰고 동물원 우리에 앉아 있다니, 황당무계하기 그지없습니다. 동물원에 가짜 동물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속을 것이라는 설명도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이걸 누가 속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해치지 않아>는 이를 모든 상황과 메시지의 대전제로 놓고 있기에 일단은 넘어가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살짝 돌아다니는 데까지는 속는다고 해도 몇 번 양보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해해 주니 선을 넘기 시작합니다. 북극곰이 손으로 콜라 뚜껑을 따서 마시는 광경에 사람들이 환호합니다.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리니 전국적인 명물이 되어 동물원 관람객이 수직 상승합니다. 보자보자 하니 마음놓고 어느새 여기까지 왔습니다.



 <해치지 않아>는 분명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영화입니다. 망할 일만 남은 동물원을 살리고자 동물 탈을 덮어쓰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그를 둘러싼 로펌과 대기업의 이권 다툼, 창살 안에 갇혀서 자아를 잃어 가는 동물 등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음이 명확하죠. 계급 사회에서 발버둥치는 부속품들의 들리지 않는 비명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구성입니다. 뼈대만큼은 그럴듯하죠.


 하지만 이를 녹여내는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비현실적인 설정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현실성을 고의적으로 떨어뜨려야 합니다. <패딩턴>에선 사람 말을 하는 곰이 사람 옷을 입고 동네를 들쑤시고 다녀도 모두 시끄러운 소동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패딩턴의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기원이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인간 세상의 리듬과 맞아들어간 덕입니다.



 <해치지 않아>는 다릅니다. 로펌과 대기업의 이권 다툼이 얽힌 동물원에서 출세를 꿈꾸는 수습 변호사가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는 상황, 그리고 누가 봐도 사람처럼 행동하는 가짜 동물들에게 모두가 속아넘어가는 광경이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어느 높이에 시선을 맞추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죠. 기저에 깔린 메시지가 제아무리 날카롭고 치밀하다 해도 그 전 과정이 부실하니 바라던 만큼의 효과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둘씩 꺼내놓은 할 말들은 후반부에 접어들며 점차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대기업, 동물권, 인간관계 등 하나하나가 한 영화의 대주제로 기능할 만큼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이 동시에 전개되며 그러지 않아도 맞지 않던 영화의 아귀를 더욱 비틀어 놓죠. 이제는 영화가 정확히 누구를 주인공으로, 주인공의 어떤 면에 초점을 두고 말을 하려는지 모를 지경에 다다릅니다.


 장르와 메시지 모두 뒤죽박죽입니다. 주인공 일행의 소동극과 물과 기름마냥 따로 노는 북극곰 까만코 이야기가 대표적인 장애물이죠. 코미디 딱지를 붙이는 순간조차 순수 코미디와 블랙 코미디 사이에서 표류합니다. 가상의 공간을 자연스레 상상하고 전제하는 웹툰에서는 별다른 장벽 없이 받아들여졌을지 모르나, 영화라는 무대에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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