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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9. 2020

<남산의 부장들> 리뷰

나란한 능란함


<남산의 부장들>

★★★☆


 <내부자들>, <마약왕>을 잇는 우민호 감독의 '욕망 3부작'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김소진이 뭉친 <남산의 부장들>이죠. 영화 시작 부분에 소개된 대로 90년대 초반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토대로 했고, 실제 사건을 각색했음을 드러내려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임상수 감독의 2005년작 <그때 그사람들>과 같은 사건을 다룬 탓에 비교할 부분도 많죠.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합니다. 이 사건으로부터 40일 전, 미국에서는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이 청문회를 통해 전 세계에 대한민국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며 파란을 일으키죠. 그를 막기 위해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이 나서고, 대통령 주변에는 충성 세력과 반대 세력들이 이리저리 뒤엉키기 시작합니다.


 정치 드라마는 충무로의 뿌리깊은 흥행 보증수표들 중 하나입니다. 각자의 강력한 개성을 자랑하는 인물과 인물이 얽히고 설킨 긴장감 아래, 각본은 단 하나의 순간을 향해 남몰래 달려가는 구성이죠.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을 통해 자신의 능란함을 증명했지만, 하나의 개인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했던 <마약왕>에서도 같은 접근법을 선택하며 패착에 이른 바 있습니다.



 때문에 <남산의 부장들>은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다시금 펼칠 만한 소재를 엄선해 탄생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한 명 한 명의 묵직한 존재감은 우위를 논할 수 없고, 이들의 대화 한 마디 한 마디에 판의 균형이 정반대로 오가죠. 달리 말하자면, 관객들에게 인물들의 소개를 마친 순간부터는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도 최대한의 파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무대라는 겁니다.


 이런 곳에서는 배우들의 연기가 각본의 무게를 결정합니다. 한 번의 찡그림과 찰나의 눈빛이 수십 수백 마디의 대사를 대신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배우들을 선택해야 하고, <남산의 부장들>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병헌부터 이성민에 이르는 주연배우들은 이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극적인 전환을 끊임없이 선보이며 극의 공기를 쥐락펴락하죠.



 하지만 이번 시도 역시 연출의 의도와 접근 방식이 완전히 일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며 남산의 부장'들'보다는 김규평이라는 한 명의 인물에게 집중합니다. 결말의 역사적인 사건은 모든 관객이 아는 것은 물론 기대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주인공이 이 순간에 이르는 과정을 아주 세세히 쪼개서 전달하려고 하죠. 그런데 막상 까 보니 감정의 가속은 의외로, 또 필요 이상으로 개인적입니다.


 겉보기에 김규평의 총성은 혁명의 배신자를 처단하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대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남산의 부장들>이 묘사하는 과정은 그보다 작은 것에서 기인합니다.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자신의 뿌리깊은 충성을 배신한 상사와 시종일관 눈엣가시처럼 구는 동료를 향한 사사로운 감정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식이죠. 때문에 김규평을 제외한 인물들은 점차 김규평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이는 영화가 영화 속 사건들을 제외한 그 어느 곳에서도 인물들을 평가할 근거를 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관객들은 오로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오는 사건들만 가지고 인물들을 파악해야 하며, 지금까지 이 사람이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인물 묘사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이겠지만, 주어진 시간 내에 선악을 완전히 규정하고 모든 움직임을 정당화하기는 부족했음이 드러난 셈이죠.


 물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흡인력을 자랑하는 영화입니다.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온 감각을 집중하게 되고, 지금의 이 작은 말과 몸짓이 이후 어떤 파장을 내게 될지 기대하고 궁금해하게 되죠. 이렇게 허락된 능동적인 예측 덕에 관객들은 이후 이야기가 예상대로 흘러가도 뻔하다고 실망하는 대신, 자신의 눈썰미를 자축하게 됩니다.



 그렇게 <남산의 부장들>은 단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에 승부수를 걸었고, 가진 재료들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며 1차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말이야 길었지만 관객들의 흥미와 집중을 사로잡기에는 이 첫 번째 단계만으로도 충분했구요. 결과적으로 배우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출연작이, 감독에게는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는 작품이 되리라는 사실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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