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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01. 2020

<히트맨> 리뷰

죽이게 웃기랬더니 웃기게 죽이기


<히트맨>

★☆


 2010년 <불타는 내 마음> 이후 10년만에 감독작으로 돌아온 최원섭 감독의 신작, <히트맨>입니다. 항상 부지런한 권상우를 필두로 정준호, 이이경, 황우슬혜, 이지원, 허성태, 허동원, 이준혁 등이 이름을 올렸죠. 2020년 설 시즌을 겨냥해 지난 22일 개봉되었고, 3주 동안 약 240만 명의 관객수를 동원했습니다. 손익분기점 돌파는 조금 아슬아슬해 보이는 상황이네요.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국정원을 탈출한 전설의 암살 요원 준.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을 양성한다는 비밀 프로젝트 '방패연' 출신임에도, 죽음을 위장하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연재하는 작품마다 악플 세례인 삼류 만화가 생활이 계속되고, 그리지 말아야 할 자신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술김에 싣게 되죠. 예상치 않게 웹툰은 하루아침에 초대박이 나지만, 그로 인해 준은 국정원과 테러리스트들의 타겟이 됩니다.


 출발은 좋습니다. 엘리트 요원 양성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방패연'도 적당히 있어 보이고, 잔혹한 교관 아래서 인간 병기로 자라나는 고아들 설정도 흔하지만 강렬합니다. 죽음을 위장한 뒤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 또한 언젠가는 과거의 본모습을 표출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하죠. 이야기를 펼쳐놓을 만반의 준비는 끝을 내 두었습니다.



 하지만 <히트맨>은 코미디입니다. 바로 전의 <미스터 주: 사라진 VIP> 리뷰를 포함한 꽤 많은 리뷰들에서 언급했듯, 첩보와 코미디는 둘 다 붙잡지 못하고 추락하기 딱 좋은 조합입니다. 대부분은 코미디의 가벼움과 첩보의 무거움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장면별 온도차가 지나치게 크거나, 웃기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은 애매함이 모든 것을 망치는 식이죠.


 <히트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하나가 인간 병기라는 최정예 요원들로 꾸린 팀, 그리고 그 요원들과 맞서며 위용을 자랑했던 테러리스트가 등장하지만 속은 텅 비었습니다. 이야기도 액션도 시작과 동시에 기력을 소진하며 단조로운 웃음 코드만을 늘어져라 공략합니다. 그 다양한 소재의 수많은 잠재력을 포기한 채 자진해서 단 한 가지 색을 향해 질주합니다.



 대부분의 코미디는 상황에 맞지 않게 벙찌는 대사와 환한 조명 아래서 이리저리 튀는 침방울에 의존합니다. 한두 번 약하게 시동을 건 뒤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하고, 후반부엔 한 장면 걸러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죠. 자연스레 액션 영화보다는 어린이 드라마에 점차 가까워집니다. 사건이 심각해질수록 개그는 점점 가벼워지는 통에 몰입도 또한 따라서 줄어들게 되구요.


 비슷한 영화들이 저지르는 또 다른 실수 가운데엔 자신이 선택한 길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충수가 있습니다. 나서서 유치해진 영화가 마치 자신은 다른 유치한 영화와 다르다는 듯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넣는 것이죠. 방금 전까지 깜찍하기라도 했던 영화가 피를 보는 것도 모자라 눈알에 칼을 꽂으니, 장르에 더해 타겟 연령층 측면에서도 미아가 되고 맙니다.



 운이 좋다면 소소한 웃음 정도는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해야 합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은 엄청나게 높은데도 기대 수익은 콩알만한 투자가 되겠죠. 머리를 비운다면 즐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머리를 비워야 한다는 전제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이 내리는 판단이어야 합니다. <극한직업> 정도를 빼면 명절 코미디를 초월한 명절 코미디 찾기가 영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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