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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01. 2020

<작은 아씨들> 리뷰

사랑이 그들 품안에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의 연기로 자신의 색을 드러낸 그레타 거윅은 연출로도 손을 뻗었습니다. 그렇게 2017년 최초의 단독 연출작 <레이디 버드>를 탄생시켰고, 시얼샤 로넌이 거윅의 페르소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죠.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바로 그 그레타 거윅이 <작은 아씨들>을 직접 감독한다는 소식은 팬들을 흥분케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 네 명 모두 저마다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서로가 있다는 사실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충분하지 않은 형편에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 행복을 찾아내고, 이웃집 귀족 소년 로리와도 인연을 쌓으며 하나둘 어른이 되어 갑니다.


 온기가 가득한 영화입니다. '자매애'라는 단어를 시각적으로 가득 옮겨낸다면 나올 법한 대사와 광경이 이어집니다. 형제애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라면, 자매애는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건네는 눈짓, 표정, 말까지 사랑을 듬뿍 담아 보듬는 품입니다. 이들의 사이를 보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수준입니다.


 거윅의 연출적 야망과 욕심도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규칙은 나 자신이 정하는 것이라는 듯 영화의 시점을 별다른 예고 없이 휙휙 바꾸고, 인물이 카메라에 직접 이야기하며 제 4의 벽을 깨죠. 고전이 된 <작은 아씨들>이라는 이야기가 자신과 배우들의 이미지를 잠식하지 않게 하려 무던 노력합니다. 대중성을 약간 희생하면서라도 명함을 내밀 여유까지 벌써 터득했습니다.



 영화는 이 영혼의 연결을 전제로 네 명의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각기 다른 사람과 각기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하나하나의 인격체를 완성합니다. 누구도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빛을 내고, 이 뚜렷한 개성과 가족애의 시너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향해 느끼는 소중함을 공유할 수 있게 하죠. 누구든 이 가족의 따뜻한 품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단단한 시선이 부재합니다. 영화는 분명히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비중을 균형있게 분배하려 최대한 노력하지만, 그 중에서도 시얼샤 로넌의 조 마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캐릭터이기도 하고, 감독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를 빌리는 인물이기도 하죠. 관객들도 그걸 충분히 인지할 수 있지만, 이를 설득할 힘은 부족합니다.



 조 마치가 주인공이라는 것은 누구나 파악할 수 있지만, 정말 그렇다고 확신할 근거는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베스나 마미 정도는 조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케 하는 조연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메그, 에이미, 로리는 적어도 조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누구나 느낄 만한 인물입니다. 뚜렷하디 뚜렷한 개성이 감독의 연출 의도와 어긋나는 사례인 셈이죠.


 때문에 조라는 개인의 이야기는 아씨들과 로리를 포함한 집단의 이야기에 필요 이상으로 자주, 그리고 많이 섞여듭니다. 한 명의 뚝심 있는 작가이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여인의 존재감은 사랑받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그림자를 능동적으로 벗어나지 못하죠. 여기에 가속도와 마침표가 되는 인물이 바로 프리드리히고, 감독의 저의를 혼동케 하는 가장 큰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건재한 캐릭터의 힘은 꿋꿋이 영화를 지탱합니다. 수많은 인물들을 한꺼번에 꺼내놓은 영화가 이들의 다음을 끊임없이 궁금하게, 또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거기에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의상상에 빛나는 눈요기로 시대물의 존재 의의에도 충실하구요. <작은 아씨들>의 영상화 횟수는 이제 한 손으로 셀 수도 없지만, 최소한 거윅은 그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증명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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