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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01. 2020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리뷰

조각에 심취한 퍼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


 당초의 개봉일보다 일주일 늦게 찾아온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입니다. 영 썰렁해진 극장가 분위기 탓에 <남산의 부장들>의 기세가 푹 꺾였고, 그걸 보고는 가장 먼저 개봉 연기 결정을 내린 영화였죠. 제목에서 풍기는 향대로 일본 작가인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두었습니다. 신인 김용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정만식, 진경, 윤여정, 윤제문 등이 이름을 올렸죠.



 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 빚에 시달리며 한 탕을 꿈꾸는 태영.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 중만.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하는 연희. 벼랑 끝에 몰린 그들 앞에 거액의 돈 가방이 나타납니다. 그렇고 그런 돈인 것이 분명해 누구든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인 상황, 지금을 하늘이 내린 마지막 기회라고 믿는 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펼쳐집니다.


 돈 가방. 상대적으로 들고 다니기도 쉽고, 겉으로 보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니 언제 어디에 있어도 딱히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으로 빽빽한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어도 아는 사람들 눈에만 보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 주인이 바뀔 수도 있고, 다른 물건들과 함께 지능적으로 이용하기도 쉬워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충분합니다.



 거기에 하나의 속성이 더해집니다. 가방이 제아무리 커 봤자 안에 들어가는 돈의 액수엔 한계가 있습니다. 크다고 하면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큰 돈이지만, 작다고 하면 고작 가방 하나에 들어차는 작은 돈입니다. 이걸 두고 평생의 인연은 물론 사람의 목숨까지도 오가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돈이 뭐고 사람이 뭔가 싶기도 합니다. 인간사와 세상살이의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기에는 참 좋은 소재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이를 전적으로 활용하는 영화입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입만 열면 말꼬리에 돈 이야기를 붙입니다. 그들의 지금이 얼마나 시궁창만도 못한 수준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이들이 돈 가방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시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뒤를 쫓는 인물들을 추가해 이들에게 '새로운 삶'이 갖는 의미를 한 단계씩 끌어올립니다.



 보여주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긴장이 덜할 것이라 판단했는지, 가방이 흘러다니는 순서를 뒤섞어 영화를 하나의 퍼즐처럼 구성합니다. 누군가가 사망하거나 사라진 이후의 장면을 먼저 보여준 뒤 앞으로 돌아가면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해서라도 열심히 보게 되죠. 두 번 이상의 관람을 할 관객들을 겨냥해 앞선 장면에 작은 복선도 한두 개씩 넣어 보는 맛을 더합니다. 


 강렬한 색채로 가득한 무대에서 각자의 뻔뻔함과 독기를 자랑하는 캐릭터들은 한 단계 덜 매운 <독전> 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개중에서도 전도연의 연희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죠. 관객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진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영화가 주는 충격의 대부분을 담당하는데, 그런 그녀마저도 삼켜버리는 돈 가방과 세상의 무질서 속 질서로 영화의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한편으로는 영화가 연희라는 인물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에 필요 이상으로 심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행적을 극적으로 드러내려 이용하는 주연급 조연들만 두 명이 넘고, 후반부쯤 들어서면 예측할 수 없다는 개성을 남발하며 오히려 예측을 가능케 하기도 하죠. 또 말도 안 되는 일탈 하나 하겠다 싶은 시점들이 슬슬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을 돈 가방 하나로 연결하기는 어려웠던 탓에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호구 물었다고 신나하던 태영은 웬 형사가 끼어들며 일이 꼬이게 되는데, 왜인지 자신을 추궁하는 박 사장에게는 형사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솔직하게 형사 때문에 일이 꼬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자신과 동료의 목숨까지 사지로 내몰죠.



 돈 가방을 하고 많은 장소들 중에 굳이 대중목욕탕 사물함에 숨기는 장면, 담배나 횟집 등 소재들의 교훈을 내비치는 장면 등은 영화적이고 문학적인 허용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반복되고 중첩되며 사회와 군상을 반영해야 하는, 돈 가방이라는 소재가 그들만의 이야기 울타리 안에 갇히고 말죠. 적당한 느낌표와 물음표에 깔끔한 마침표까지 찍었으나, 스크린 밖을 지나치게 겁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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