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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0

<인비저블맨> 리뷰

구멍낸 투명함


<인비저블맨>

(The Invisible Man)

★★★


 슈퍼히어로들이 판치는 극장가를 부러워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다크 유니버스(Dark Universe)'라는 이름의 괴물 세계관을 기획했더랬습니다. 2017년 톰 크루즈의 <미이라>가 그 시작이었지만, 첫 단추부터 삐걱대며 프로젝트는 순식간에 백지화되었죠. 당초 조니 뎁 주연으로 기획되었던 <인비저블맨> 또한 기약 없이 창고로 돌아가야 했고, 결국은 <업그레이드>의 제작사 블룸하우스와 리 워넬 감독에게 기회가 돌아갔습니다.



 광학 연구의 선구자였지만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소시오패스인 애드리안, 그런 그에게서 도망친 세실리아. 그와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은 세실리아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무너진 일상을 마주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드리안의 자살 소식과 함께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죠. 마침내 자유가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애드리안은 죽은 뒤에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되어 그녀의 곁을 떠도는 것만 같습니다.


 주인공은 애드리안이 아니라 세실리아입니다. 접근이 좋습니다.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를 인간의, 정확히는 주변인의 심리와 연결합니다. 지금껏 투명인간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투명인간 본인의 이야기를 다루었죠. 잠시의 혼란에 이어지는 도덕적 선택의 기로 등 분화가 다양하기는 했지만, 초점은 기본적으로 투명인간 본인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인비저블맨>은 다릅니다. 샤워할 때 문득 느껴지는 뒤통수의 인기척부터 개인적인 트라우마까지, 빈 공간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원초적인 공포를 소재와 연결합니다. 영화는 과감하게도 둘의 연애사를 비롯한 설명을 생략한 채 세실리아가 애드리안의 집에서 도망치는 장면에서 출발하는데, 덕분에 초반부부터 목표한 연출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죠.


 의도는 노골적입니다. 영화는 잊을 만 하면 세실리아의 옆 공간을 음산하게 비추며 마치 지금 바로 이 공간에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불안을 관객에게 주입합니다. 분명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데도 무언가 움직인 것 같기도 하고, 추운 허공에 입김이 날린 것 같기도 합니다. 불 꺼진 극장에 이 불안을 나누고 확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별다른 기교 없이도 관객들은 세실리아의 심리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되죠.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는 순간, 정확히는 투명인간의 실체를 공고히 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직전까지 쌓아올린 매력들을 급격히 잃어버리고 맙니다. 영화가 유발하고 또 실제로 연출해내는 불안은 모두 투명인간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었죠. 세실리아의 확신과 주변인들의 불신이 비례하며 극의 진행과 결말을 더욱 궁금해하게끔 하는 구조였구요.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게 한계에 다다른 영화는 상업성을 향해 노선을 크게 변경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설득력까지도 잃어버리기 시작하죠. 정확히는 제작사와 감독의 전작인 <업그레이드>를 크게 다르지 않게 재현하는데, 대부분의 문제는 인공지능 강화 인간과 투명인간을 동일선상에 놓으며 발생합니다. 흔한 CCTV 영상 하나면 끝날 일이 몇 날 며칠을 이어지는 것이 대표적이구요.



 제작사와 감독 모두 <업그레이드>의 신선함은 소재와 연출이 맞물린 결과물이었음을 망각했습니다. 어둑어둑하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칩거하며 음침한 연구를 이어가는 천재 과학자와 평범한 희생자 공식은 이제 효력을 다했죠. 액션의 수위는 관객들의 비위를 위해서라도 상한선을 두는 것이 맞지만, 각본의 과감함마저 투명인간처럼 숨어버릴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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