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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0

<정직한 후보> 리뷰

진실 맹신


<정직한 후보>

★★☆


 2017년 <부라더> 이후 3년만에 돌아온 장유정 감독의 신작, <정직한 후보>입니다. 라미란, 김무열, 나문희, 윤경호, 장동주, 온주완, 윤세아, 조한철, 김용림 등이 이름을 올렸죠. 브라질에서 2014년 개봉된 동명의 영화(<O Candidato Honesto>)를 원작으로 두었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 해야 하는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설정은 먼저 다룬 영화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거짓말이 제일 쉬운 3선 국회의원 주상숙. 할머니의 생사마저 속이며 일거수일투족을 정치에 이용하고 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제발 우리 상숙이가 깨끗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할머니의 소원에 청천벽력이 떨어집니다. 바로 하루아침에 거짓말이라고는 튀어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진실의 주둥이'를 갖게 된 것이죠. 잃어서는 안 되는 최고의 무기를 잃은 상숙의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리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새로운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디어는 아주 간단합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게다가 그 상황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신령스러운 힘 때문이라 절대로 거역할 수 없다면? <정직한 후보>의 기승전결은, 충무로 코미디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웃음과 감동 모두 이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고 끝을 맺습니다. 거짓말은 나쁘다는 교훈을 전달하는 가장 뻔하고 쉬운 길을 걸어가죠. 



 전제가 단순한 만큼 거기서 이끌어내는 모든 문제도 단순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정직한 후보>의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고 질서를 바로잡는 식의 고차원적인 활동이 아닙니다. 그저 뺀질뺀질한 권력자들이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만 하는 광경의 연속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재의 깊이는 애시당초 고려하지 않았기에 무거운 소재도 아주 얕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 가벼운 시선으로 참 많이도 바라보았다는 겁니다. 구린 정치인이 엮일 수 있는 모든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사건들을 죄다 끌어모읍니다. 상대 후보와의 뒷거래부터 비리 장학재단에 희생당한 학생까지, 하나하나로 다큐멘터리 한 편씩은 너끈히 나올 법한 소재들을 반찬거리로 훑어내죠. 그 끝에는 어찌됐든 거짓말만 안 하면 다 좋게 끝이 난다는 낙관이 기다리고 있구요.



 여기서 누구보다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 주상숙은 누구보다 크게 휘둘리는 인물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당황했다가 내심 반기기도 하고, 다시 궁지에 몰렸다가 안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감정의 폭은 진실을 말하게 되었다는 후련함보다는 이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주변의 반응에서 기인합니다. 입으로 사고를 쳤는데 어째 반응은 의외로 좋아서 아무렇지 않게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결국 거짓말을 하든 하지 않았든 중요한 것은 본인의 정직함보다는 대중의 용서라는 결과가 나오게 되죠.


 다시 말해 극중 상숙이 처하는, 영화의 각본이 사건의 가장 큰 전환점으로 잡는 사건들은 따져 보면 거짓말과는 딱히 연관이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설정이 없었더라도 얼마든지 굴릴 수 있었던 기승전결을 가장 핵심적인 이벤트로 삼아 버리죠. 결국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설정은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일관하는 코미디에서만 생명력을 발휘하고, 영화는 그렇게 스스로의 한계에 봉착합니다.



 장타엔 자신이 없으니 단타로 러닝타임을 그득 채웠습니다. 웃음과 눈물 모두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고, 품었던 기대는 애석하게도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깨집니다. 바라보고 있기 고통스러운 수준까지 떨어지지는 않지만, 근본적인 공허함을 다른 곳에서 메우려다 보니 걷잡을 수 없이 얕아지기만 합니다. 차라리 정치판까지 다른 상황에 빗댄 우화였다면 시너지를 기대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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