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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0

<다크 워터스> 리뷰

눌어붙은 거짓


<다크 워터스>

(Dark Waters)

★★★


 <캐롤>과 <원더스트럭>의 토드 헤인즈가 돌아왔습니다. 마크 러팔로, 앤 해서웨이, 팀 로빈스 등이 이름을 올린 <다크 워터스>죠. 현실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길 즐겼던 감독이 <스포트라이트>가 연상되는 묵직한 고발 영화를 맡았습니다. 소설가 나다니엘 리치가 <The Lawyer Who Became DuPont's Worst Nightmare>라는 제목으로 뉴욕 타임스에 기고했던 기사에서 출발한 작품이기도 하죠.



 대기업의 변호를 담당하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 롭 빌럿은 세계 최대의 화학 기업 듀폰의 독성 폐기물질(PFOA) 유출 사실을 폭로합니다. 사건을 파헤치던 그는 듀폰의 만행이 더 이상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일반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커리어는 물론 아내 사라와 가족들, 모든 것을 건 싸움을 시작합니다.


 현실과 맞닿은 고발 영화라고 해서 영화적인 공식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일단 주인공은 변호사, 기자, 말단 직원 등 외부에서 내부로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악당 자리를 가져가는 쪽은 세상의 법칙이 자기 손바닥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악질적인 개인 혹은 단체구요.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고구마 줄기를 파헤치듯 관련된 명단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이내 멈출 수 없어진 주인공에게 선택지는 없습니다.



 <다크 워터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종의 영화들이 걸어왔던 길을 안전하게 걸어가죠. 대기업의 편에서 번지르르한 생활을 꿈꿔야 맞는 변호사가 돈도 빽도 없는 피해자들의 편에 서는 과정, 그리고 모두가 알지 못했던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을 교차합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아무래도 감독과 배우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진실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겠죠.


 그 진실이라 함은 바로 누구나 들어 보았을 기업이 누구나 들어 보았을 제품을 만들며 전 세계 인구의 99%에게 가한 잠재적 위해입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이름부터 귀에 박힐 C8(...)이라는 물질의 엄청난 위험성, 그리고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천문학적인 수익에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눈과 귀를 가린 듀폰의 악행이죠. 



 다만 소재의 무게 자체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기댔습니다. 이 진실이 워낙 충격적이라고 판단한 탓에, 이를 전달하기만 해도 영화적 의의는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죠. 때문에 주인공인 롭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물들은 하나의 인간보다는 진실을 전달하는, 영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재료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꼭 필요한 장면이 되어서야 최소한의 감정을 드러내는 식이죠. 


 앤 해서웨이의 사라나 팀 로빈스의 톰 쪽으로 가면 상황이 더욱 좋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미약한 개성은 영화가 사실을 설명하는 순간 이외의 구간들을 과감히 뛰어넘기로 결정하며 더욱 종잡을 수 없어지죠. 어려운 용어들이 빗발치는 출발점과 경각심을 주어야 하는 도착점에만 열을 올렸고, 짧은 감정 분출과 자막이 감당하기엔 힘이 부친 탓입니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차라리 캐릭터에 신경쓸 필요가 전혀 없는 다큐멘터리가 훨씬 나은 선택이 되었겠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딱딱한 내레이션과 자막보다는 아무래도 할리우드 스타들의 입과 극장 스크린을 빌리고 싶었겠지요. 그렇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하고 이런 일에도 이토록 힘을 쏟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리는 최소한의 목적은 <다크 워터스>라는 영화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결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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