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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0

<용길이네 곱창집> 리뷰

무작정 건너온 무대


<용길이네 곱창집>

(焼肉ドラゴン)

★★☆


 정의신 감독과 김상호, 이정은, 마키 요코, 이노우에 마오, 사쿠라바 나나미, 오오즈미 요, 오타니 료헤이 등이 이름을 올린 <용길이네 곱창집>입니다. 2018년 5월 열린 제 19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던 작품이 정식 개봉까지는 무려 2년이 걸렸네요. 원작이 되는 연극의 제목과 전주영화제 때의 제목 모두 원제인 <야키니쿠 드래곤>이었지만, 극장가에는 <용길이네 곱창집>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습니다.



 1969년, 고도 성장이 한창이던 일본 오사카 공항 근처의 판자촌. 전쟁 때 자식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넘어온 용길와 영순은 바로 그 곳에서 '용길이네 곱창집'이라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죠. 가게 안을 채우는 사람들이라고는 바람 잘 날 없는 딸 셋에 아들 하나, 그리고 외상만 늘어 가는 붙박이 친구들뿐입니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지금, 용길이네는 가족이 있기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가족사진 느낌 가득한 포스터에서부터 희망찬 내일의 그림자가 느껴집니다. 이런저런 갈등을 겪고서도 가족의 힘으로 극복해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일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용길이네 곱창집>은 그런 긍정 에너지에 흠뻑 취하려고 관람하기에는 어두운 면이 다소 많은 영화입니다. 일본 영화 특유의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 흘러가는 일상물'에 자이니치(재일교포/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담은 작품인 탓이죠.



 수많은 재일조선인 감독들은 자신의, 혹은 주변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각본에 녹여낸 작품들에 창작 세계를 바쳐 왔습니다. <용길이네 곱창집>의 정의신 감독만 하더라도 이 쪽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각본을 담당했었죠. 일본과 한국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자신의 뿌리를 잊지 못하면서도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유서 깊은 애환을 다루는 작품들입니다.


 <용길이네 곱창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륜이나 학교 폭력 등 보통의 영화들에서 다루어도 크게 이상할 것 없는 소재들의 기저엔 주인공들의 갈 곳 없는 뿌리가 있습니다. 돈 한 푼 벌지 못할 것이 분명한, 다 쓰러져 가는 곱창집에 굳어 버리고 만 삶과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삶이 뒤섞이죠. 커다란 사건에서 출발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대부분의 역사물과 달리 개인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려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의 접근법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연극이었을 때 가졌던 강점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물론 단점까지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처럼 보이죠. 연극에서는 공연장에 곱창 냄새를 피워 내내 관객들의 감각을 자극할 수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불판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제목에까지 들어간 '곱창집'이라는 무대마저 순식간에 잊혀지기 쉽습니다.


 단적인 사례로, 기존 연극의 무대가 되는 곱창집 밖에서의 사건들은 모두 대사로 대체하거나 인물들의 외양으로 유추하게끔 만들 수 있는 수준입니다. 연극에서 무대장치의 한계로 표현할 수 없었던 장면이나 소재들을 확장판 개념으로 키운 격이죠.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별 사건 없이 느긋한 전개는 더욱 느려지고, 극적으로 지나치게 널뛰는 캐릭터들의 감정선도 보호하지 못합니다.



 연극이기에 가능했던, 무대 암전을 기대하며 하나의 막을 끝내는 장면도 영화에서는 곧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에 뜬금없어 보이거나 편집이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메시지와 의의에 집중해 매체 이식에는 소홀했고, 대부분의 장점이나 특징은 단점이 되어 돌아왔죠. 그렇게 재일조선인 감독들의 작품 세계를 다룬 강의안에는 적합할 지 모르나, 극장가에는 썩 어울리지 못하는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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