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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0

<블러드샷> 리뷰

분노의 직진


<블러드샷>

(Bloodshot)

★★★


 주요 기대작들이 모두 개봉 연기를 선택한 바로 이 시기, <온워드>와 함께 용감하게도 개봉을 결정한 <블러드샷>입니다. 발리언트 코믹스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했고, 마블이나 DC처럼 발리언트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할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죠. 넷플릭스 <러브, 데스+로봇>의 첫 에피소드를 제작한 데이브 윌슨이 메가폰을 잡아 빈 디젤, 에이자 곤잘레스, 토비 케벨, 가이 피어스, 탈룰라 라일리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인질 구출 작전에서 대활약한 우리의 주인공 레이 개리슨은 아내 지나와 함께 이탈리아의 휴양지를 찾습니다. 간만의 휴가에 마음을 내려놓은 것도 잠시, 구출 작전의 배후를 캐려던 미치광이 과학자 마틴의 손아귀에 지나를 잃고 머리에 총을 맞게 되죠. 정신을 차린 곳은 한 최첨단 시설 안, 나노 기술의 힘으로 부활한 레이는 주변의 조언도 무시한 채 복수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코믹스 원작의 파괴력을 그대로 갖고 온 액션 영화입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 <오블리비언> 등 우리의 과학력은 세계 제일이라 외치는 최첨단 기술과 장비들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죠. 아무리 봐도 껍데기만 그럴 듯하고 현실에 구현하려면 이과생들이 죽어나갈 것 같지만, 일단 눈요기 하나는 확실하니 좋은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흥미의 대부분은 무적 그 자체가 된 레이 개리슨의 초능력에서 나옵니다. 수십 수백 킬로그램의 아령을 번쩍번쩍 들고, 총을 맞아서 머리의 절반이 날아가도 엄청난 속도로 회복되죠. 99%의 의문은 그의 혈액 속에 최첨단 나노 로봇들이 돌아다닌다는 설정으로 사전에 차단해 버립니다. 울버린이나 데드풀처럼 회복 능력을 갖춘 주인공 덕에 악당들의 명중률도 수직 상승합니다.


 덕분에 최소한 SF 액션 쪽에서는 명장면이라고 부를 만한, 예고편에 넣기에도 좋고 극장 관람에도 좋은 장면들이 군데군데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힘 자체로 압도하며 아드레날린이 넘쳐 흐르는 순간들이죠. <분노의 질주>, <리딕>, <트리플 엑스> 등 빈 디젤이 여러 시리즈로 쌓아 온 이미지를 십분 활용합니다. 민소매 셔츠 입고 다 때려부수는 빈 디젤의 모습은 한 시리즈에서만 8번을 본 덕이죠.



 한편으로는 주인공들을 정확히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을 보고 캐스팅했는지가 너무나도 분명하기에, 캐릭터 쪽에서 신선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름이나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은 다른 영화가 떠오르기라도 하지, '혼자 신난 공돌이'나 '덩치 좋은 부하' 쪽으로 가면 더욱 서글퍼지죠. 너무나 많은 영화들에서 너무나 많이 봐 왔던 터라 돌아서면 잊어버릴 얼굴들이 대다수입니다.


 사실상 슈퍼히어로 장르를 표방하고 무적의 주인공이 다 부수는 영화치고는 의외로 각본에서 흥미를 느낄 구석이 많지만, 기껏 고조한 분위기가 중반부 이후에는 꽤 급격하게 무너집니다. 힘이면 힘, 지능이면 지능까지 지나치게 완벽한 주인공에게 흠집을 내려 작은 무리수를 두기 시작하고, 그 무리수들이 쌓여 영화의 설득력을 허물어 버리는 탓이죠.


 라몬 모리스가 맡은 윌프레드 위긴스가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습니다. 뚜렷한 동기도 없이 레이의 편에 서서 활동하기 시작한 이 인물은 지금껏 오로지 기술력 하나로 암흑가를 지배한 거대 기업의 시스템을 노트북 하나로 상대하죠. 대충 껍데기만 갖춰 놓고 눈요기로 때우려는 접근을 각본에까지 확대한 결과물인데, 뜬금없는 행동이나 감정선은 거의 모든 캐릭터의 특징이자 단점이기도 합니다.



 <블러드샷>의 감독인 데이브 윌슨은 이전까지 <디비전>, <엘더 스크롤 온라인>,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등 비디오게임 시네마틱과 예고편 제작자로 활동해 왔습니다. 주루룩 언급한 특징과 장단점 모두 게임 예고편 제작자가 만들었다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들이죠. 심지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편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적어도 세계관의 첫 단추가 되어야 할 영화가 가져가서는 안 되는 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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