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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30. 2020

<파라다이스 힐스> 리뷰

허황찬란


<파라다이스 힐스>

(Paradise Hills)

★★


 로맨틱 코미디와 호러로 주종목을 굳힌 엠마 로버츠가 <리틀 이태리> 이후 2년만에 돌아온 <파라다이스 힐스>입니다. 신인 감독 앨리스 웨딩턴의 장편 데뷔작으로, 2019년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뒤 국내에서 직접 보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네요. 주인공인 엠마 로버츠 외에도 에이자 곤잘레스, 밀라 요보비치, 다니엘 맥도날드, 아콰피나, 제레미 어바인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어느 날 '파라다이스 힐스'라는 낯선 곳에서 깨어난 우마. 외딴 곳에 고립되어 매력적인 것들로 가득한 섬이지만, 도대체 누구의 사주로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초대된 모두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준다는 것밖에 알 수가 없는 상황, 우마는 룸메이트로 만나게 된 동료들과 함께 서서히 파라다이스 힐스의 어두운 진실을 맞이합니다.


 출발은 과감합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모두 생략한 채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는 미지의 장소에 주인공을 던져 넣습니다. 관객들의 시선을 공포와 혼란으로 가득한 주인공의 시선과 일치시켜 단순간에 몰입도를 끌어올립니다. 이 방면으로는 공중에서 추락하는 주인공의 얼굴을 비추며 시작했던 2010년 <프레데터스>가 명성을 가져간 바 있죠.



 중반 직전까지는 섬이나 마을 등 한정된 장소를 무대로 하는 미스터리 영화들과 궤를 같이합니다. 주인공은 그 곳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던 괴상한 규칙과 관습을 맞닥뜨리며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죠.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이상하고 비상식적이지만, 어째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주인공뿐인 것만 같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로 나뉩니다. 그 미스터리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풀어내며 그 곳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비밀을 밝히거나, 혹은 끝까지 그를 설명하지 않은 채 더 큰 미스터리와 혼돈 속으로 다가가는 것이죠. 대부분의 상업 영화들은 속시원한 전자를 선택하고, 감독의 세계관을 담아내는 예술 영화들은 찜찜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후자를 선택하곤 합니다.



 그런데 <파라다이스 힐스>는 둘 다 아닙니다. 정확히는 전자를 선택하면서도 후자가 주는 신비로움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설명하면서 꼭 설명해야 하는 것들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짐짓 대단해 보였던 것은 실없는 것으로 밝혀지지만 처음부터 실없었던 것들은 끝까지 별볼일이 없습니다. 메시지에 녹여내려던 분노는 있으나 전달 수단은 그저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함은 속이 텅 비어 있습니다. <헝거 게임> 시리즈의 귀족들이 비슷한 패션 센스를 자랑했지만, 이는 이들의 허영을 표현하는 동시에 다른 구역들과의 차별점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파라다이스 힐스>가 덕지덕지 발라둔 눈요기는 영화 내에서의 실용성과 각본에서의 상징성 중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죠. 색감과 해상도를 강조하는 TV 진열장에나 어울릴 화면이 무의미하게 이어질 따름입니다.


 말 그대로 어쩌다 마주쳐 모험을 함께하는 주인공 무리의 감정선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특별한 것이라고는 없는 한 명의 일탈에 무너져내리는 '파라다이스'의 공허함은 두말할 것도 없구요. 어설픈 CG로 표현한 근미래적 소재들은 역시나 아무런 잠재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설정과 전개에 허우적대며 오류와 구멍을 끊임없이 찍어내죠.



 너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메시지의 단순함과 과한 영상미를 고려한다면 케이티 페리의 뮤직 비디오 쯤이 훨씬 나은 선택이 되었을 겁니다. 예전이었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라는 말이 딱 맞겠다고 이야기했겠지만, 급격한 성장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도전하는 최근 넷플릭스의 행보를 보면 그것도 과분한 수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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