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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12. 2020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리뷰

아빠 찾아 주사위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Onward)

★★★


 자사의 <뮬란>과 <블랙 위도우>가 무기한 연기되며 졸지에 버리는 카드가 된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입니다. <몬스터 대학교>의 댄 스캔론이 감독을 맡고 크리스 프랫과 톰 홀랜드가 공동 주연을 맡았지만, 본토 개봉 2주만에 스트리밍 서비스로 넘어가는 비극을 맞이했죠. 천하의 디즈니와 픽사 합작이라고 하기엔 서글프고 초라한 행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법이 사라진 세상, 달라도 너무 다른 용기부족 동생 이안과 의욕충만 형 발리 형제. 이안이 16살이 되던 날, 형제는 예전에 세상을 떠난 아빠가 남긴 편지를 받아듭니다. 장성한 아들들을 보고 싶었던 아버지는 둘이 다 자라게 된 날, 딱 하루만 이승에 돌아올 수 있는 마법을 남긴 것이죠.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빠의 하반신만이(!) 소환되고, 형제는 완벽한 아빠의 모습을 만나려 세기의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마법과 가족애라니, 디즈니의 손이라면 치트키나 다름없는 재료가 두 개나 들었습니다. 캐릭터의 생김새는 디즈니보다는 드림웍스 쪽에 가까운 것 같지만, 어쨌든 일단은 믿고 보게 되는 조합이죠. 거뭇거뭇한 턱수염과 살집이 특징인 형 발리가 크리스 프랫, 왜소하고 자신감도 없는 동생 이안이 톰 홀랜드라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신선하기도 하구요.



 많은 영화들이 마법이나 초능력을 진화나 발전의 결과물로 취급하는 것과 달리, <온워드>는 마법이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어 사라졌다고 이야기하며 출발합니다. 일단은 과학 기술의 발전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는 하는데, 딱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죠. 스마트폰으로 방구석에 앉아서도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다고 해도 초능력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애초에 선택받은 소수만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당에 굳이 필요한 설정인가 싶기도 하구요.


 이처럼 첫 단추부터 다소 불안한 <온워드>는 더욱 강제된 경로로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합니다. 마법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우리의 형 발리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음에도 존재하는 모든 마법 주문과 역사를 달달 외우는 캐릭터죠. 자신감은 없지만 마력을 타고난 동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각본의 거의 모든 구조 요청을 전담합니다.



 그렇게 형제의 모험은 마치 한 칸 한 칸 미션을 수행하는 보드게임을 격파하듯 진행됩니다. 특정한 장소와 시련을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마법을 시도하고 감정선의 새로운 굴곡을 맞이하죠. 패밀리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맨티코어와 폭주족 요정 등 깜찍한 조연들이 의외성과 상품성(...)을 더하고, 딱히 그렇게 소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 형제의 우정도 여러 차례 시험에 듭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형제의 이야기도 강렬한 줄기이긴 하지만, 완전한 그림으로 보면 친구들에게 같이 놀자는 말조차 제대로 붙이지 못하던 이안의 성장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간단한 마법부터 시작한 이안은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야만 사용이 가능한 강력한 마법에도 도전하고, 예전의 자신이라면 곧바로 발길을 돌렸을 두려움에도 정면으로 맞서게 되죠.



 문제는 이 자신감의 원천이 순수한 자신감이나 우정, 형제애보다는 타고난 마법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영화들, 특히 애니메이션은 선천적인 자질보다는 후천적인 노력과 마음가짐에 비중을 두곤 하죠. 마법이 존재한다면 최소한 등장인물 모두 공평한 입장에서 출발하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 주인공처럼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온워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잘것없었던 소년이 하늘을 걸을 수도, 집채만한 괴물에게 일격을 날릴 수도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 좋게 타고난 마력 덕분이죠. 형 발리는 사실상 가족애 코드를 좀 더 현실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말하는 마법책에 불과합니다. 비가 내린 덕분에 땅이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을 굳어지게 하려 비를 내리는 준비물인 셈이죠.


 이 모든 허점을 매듭짓는 대망의 한 방은 단연 가족애입니다. 다 자란 아들들을 보러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아버지라니, 읽기만 해도 휴지 한 다발 챙겨야 할 문장이 기다리고 있죠. 언제 어떤 상황에서 꺼내 들어도 이성적 판단을 상실케 하는 버튼이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앞선 설정들과 달리 각본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상당한 공을 들인 덕에 일종의 마지막 기억 조작 마법(!)으로 기능하죠.



 디즈니 픽사의 이름값에 걸린 기대에 완전히 부응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마법이라는 초현실적인 소재에 향수와 추억이라는, 한없이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향기를 입히는 데 성공한 영화이기도 하죠. TRPG를 양지로 들여보내는 등 여러모로 실험적인 면도 많았고,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공정한 평가와 반응을 기다렸을 텐데요. 제대로 된 기회조차 갖지 못해 한층 아쉬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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