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Apr 12. 2020

<주디> 리뷰

무지개 끝 보물


<주디>

(Judy)

★★★


 2015년 <트루 스토리>로 장편 데뷔한 루퍼트 굴드 감독이 5년만에 극장 개봉작으로 복귀한 <주디>입니다. 두 편만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얼굴을 보게 된 감독이기도 하죠. <오즈의 마법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주디 갈란드의 말년을 다루었고, 주연으로 출연한 르네 젤위거는 이 영화 덕에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기약없는 무대를 전전하는 왕년의 스타 주디 갈란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만 갑니다. 성공에 눈이 멀었던 주변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지금의 처지까지 내몰렸지만, 무대는 그런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꿈이자 희망이기도 하죠. 온갖 히스테리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그렇게 그녀는 오늘도 무대에 오릅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로만 기억될 줄 알았던 주디 갈란드.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스타인 그녀가 온갖 학대로 얼룩진 삶을 보냈다는 사실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상식이 되었고, <주디>는 그런 그녀의 삶을 뒤늦게나마 위로하려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주디 갈란드의 삶을 소재로 하면서도 가장 빛나던 전성기를 다룬 영화도,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도 아니라는 점에서 분명히 알 수 있죠.



 때문에 약간의 진입 장벽이 있는 영화입니다. <주디>는 주인공의 인생사가 꽤나 짙은 명암으로 얼룩졌음을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주디 갈란드라는 인물을 '유명한 영화배우'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화면을 받아들일 시간이 다소 부족할 수 있죠. 스타가 제작사 관계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무대에 오르기 전 히스테리를 부리는 설정은 흔하지만, 주디 갈란드는 경우가 조금 다른 탓입니다.


 영화는 그렇게 누구보다 무대를 싫어할 이유가 충분했음에도 결코 무대를 떠날 수 없었던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단상에 서서 마이크만 잡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만인에게 사랑받을 준비를 끝마치는 그녀의 당당함을 여러 번 강조합니다. 그 이면에서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그녀가 겪어야 했던 아픔, 상처, 그리고 흉터를 통해 그녀에게 '무대'가 갖는 의미를 계속해서 포개죠.



 영화의 각본에서라면 비교적 평범한 이야기가 '실화'라는 이유로, 그것도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인물이 겪었다는 이유로 의미를 갖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놀랍도록 순진한 면모가 남아있음이 드러날 때마다 관객들의 감정선을 크게 움직이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주역은 주디 갈란드를 연기한 르네 젤위거입니다.


 르네 젤위거는 특수분장으로 코 끝을 늘리고 가발을 쓰는 등 주디 갈란드의 외모를 재현하는 데에도 열심이었지만, 1년의 보컬 트레이닝을 거쳐 촬영에 임한 뒤 생애 첫 번째 솔로 앨범을 내기로 하는 등 노력도 전혀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각본의 심심함을 메우는 것을 넘어 영화의 마지막이자 주디 갈란드의 마지막을 홀로 책임지는 위치이기도 하구요.



 거기에 아동 학대와 업계의 부조리를 부분적으로 다루면서도 자극적인 화면이나 대사로 균형이나 집중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디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뚝심을 유지하죠. 불변하는 인물의 불변하는 이야기는 수많은 유행과 잣대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여러모로 아카데미 시상식이 한 자리 내주기 딱 좋은 작품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