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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n 06. 2020

<침입자> 리뷰

속 뻔한 야바위


<침입자>

★★


 <결백>과 함께 본격적인 개봉 준비로는 2월 말부터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바로 그 영화, <침입자>가 드디어 정식 개봉을 맞이했습니다. 손원평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송지효와 김무열이 투톱으로 나선 미스터리 스릴러죠. 흥미롭게도 손원평 감독은 요새 서점만 가면 시무룩한(...) 표지 구경하기 어렵지 않은 베스트셀러 <아몬드>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사고로 아내를 잃고 하나뿐인 딸 예나와 함께 살고 있는 건축가 서진.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25년 동안 찾아 헤맸던 동생 유진이 나타납니다. 어딘가 수상함을 느끼는 서진과 달리 가족들은 유진을 금방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죠. 그런데 이후 가족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이를 의심스레 여긴 서진은 동생의 비밀을 쫓던 중 엄청난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느 곳보다 편안해야 할 나의 집, 누구보다 익숙해야 할 나의 가족. 그런데 그 공간 그 무리에 전혀 알지 못했던 침입자가 나타납니다. 그렇게 나타난 낯선 존재를 향한 적대감은 아주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 맞지만, 왜인지 누구도 이 감정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바로 그 때, 침입자는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 고통도 끝이 난다고 이야기하죠.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특정한 사실에 대한 믿음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진실'의 두 가지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진실은 어떠한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적인 것일 수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 자체가 새로운 진실이 되는 상대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갈림길이 <침입자>가 지향했어야 하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침입자>는 좀 더 자극적이고 일차원적인 방향을 택했습니다. 진실의 의미를 탐구하기보다는 관객들의 머릿속을 헤집는 오락 쪽에 집중한 것이죠. 유진이 진짜 동생이라는 근거에 객관적인 사실과 거짓을 뒤섞는 동시에, 서진에게 헛것을 볼 수도 있는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설정을 집어넣는 식으로 모두를 교란합니다.


 물론 이를 장르적 재미에 충실하려던 시도로 볼 수도 있지만, 참고 참았다가 정말로 필요할 때에 딱 한 번만 써야 하는 눈가리개식 전개를 밥먹듯이 끌어다 사용하는 것은 어느 기준에서도 과합니다. 정신 발작에 최면 치료에 약물 등 주인공을, 나아가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려는 장치들을 남발하며 각본의 허술함을 애써 가리죠.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시도들마저 순간적인 효과만을 낼 뿐, 이후 뒤돌아 살펴보면 개연성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유진의 비밀에 따르면 초중반부에 걸쳐 쌓은 의심들은 구태여 사서 당할 필요가 없었던, 얼마든지 대비하거나 애초에 당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들이죠. 단순히 한 장면의 재미를 위해 영화의 일관성을 반복적으로 포기하니 연결이 매끄러울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집과 가족의 의미와 책임 등 친절하게 입 밖으로 내어 알려주는 교훈들까지 끼얹습니다. 개인의 기억과 감정을 비롯한 내면에 집중하던 영화가 갑자기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도 의문스러운데, 그 근거마저도 빈약하거나 엉뚱하니 귀에 제대로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애초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불분명하기에 의미가 있는 대상에 정답을 전제한 것부터 오류입니다.



 장면 장면의 소비적인 측면에만 신경쓸 뿐 큰 그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소재의 매력도 완전히 발산하지 못했고, 받아들이기에 따라 뜬금없거나 터무니없는 설정들만이 빈 자리를 채웁니다. 그렇게 진실과 가족이라는 전혀 다른 두 지향점 중 어느 쪽도 완벽히 감싸지 못한 채 스스로의 무리수에 자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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