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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n 08. 2020

<프랑스여자> 리뷰

곧 죽어도 내 이야기


<프랑스여자>

★★★


 <열세살, 수아>와 <설행_눈길을 걷다>의 김희정 감독 신작, <프랑스여자>입니다. 김호정을 주연으로 김지영, 김영민, 류아벨 등이 이름을 올렸죠. 상업 영화가 아닌지라 요즘 극장가의 암울한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았지만, 당초 5월 중순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개봉일을 2주 연기해 지난 4일 개봉되었습니다. 



 한때 배우를 꿈꿨지만 파리 유학 후 프랑스인 남편과 정착한 미라. 이별의 아픔을 겪고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20년 전 함께 공부했던 옛 친구들, 영화감독 영은과 연극 연출가 성우를 만납니다. 반가움도 잠시, 모임에 항상 함께했으나 2년 전 세상을 떠난 해란을 떠올리며 분위기가 묘해지죠. 어느 것도 선명하지 않은 기억 속, 미라는 자신과 모두의 과거를 한 꺼풀씩 들추기 시작합니다. 


 보여주는 대로 따라가면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영화입니다. 미라가 주인공이라는 사실만 자명할 뿐, 의도적으로 비틀린 사건의 순서나 전말 탓에 대강의 그림을 잡는 데에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죠.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프레임으로 인물들을 고정하고, 그것이 익숙해질 때쯤 구도를 바꾸거나 실마리를 던지는 식으로 집중력을 유지합니다.



 러닝타임을 버티기 쉬운 영화는 아닙니다. 몇몇 장면들은 말 그대로 술자리에서 한두 잔 들이켰을 때 나오는 횡설수설을 그대로 찍어 넣은 것만 같고, 화면 자체의 감성에 젖어들기를 요구하는 정적인 순간도 많죠. 영화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별다른 것을 보여주지 않음에도 이를 최후반부까지 밝히지 않는 탓에 인내심을 잃기도 쉽습니다.


 결국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게 만든 뒤 마지막 한 방으로 직전까지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화입니다. 지금껏 봐 오면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들, 왜 보여주는지 몰랐던 것들, 나중에 설명해주리라 기대했던 것들의 의문이 한 순간에 풀립니다. 물론 완성되는 것은 전체적인 그림일 뿐, 그에 갖다대는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잣대는 관객들 각자의 판단에 남아 있죠.



 이는 <프랑스여자>가 남녀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두 명이 한 명을 동시에 좋아하게 되면서 시작될 수도 있지만, 잘 만나고 있던 커플에 한 명이 끼어들면서 생기는 유형은 차원이 조금 다르죠. 사람의 감정은 자기 자신조차 어찌할 수 없다는 핑계는 보통 가해자가 되는 쪽의 배부른 변명에 불과합니다. 


 미라는 자신의 내면이나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남들이 속 이야기 좀 해 보라고 하면 그렇게 대꾸합니다. 그런데 듣다 보면 정말 그래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이유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라 스스로 그 이유로부터 멀어지고 도망쳐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데 성공합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성공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미라는 두 번의 삼각관계에서 정반대의 자리에 서며 스스로를 강제로 되돌아봅니다. 자신이 내뱉었던 말, 혹은 숨겨 왔던 말의 무게를 되새깁니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하는 이기적인 선택이었다고 비난하기는커녕, 고통받는 미라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일종의 자기 용서이자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일 여지까지 남기죠. 


 영국 드라마 <셜록>의 네 번째 시즌에서 존 왓슨은 부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려다 이내 마음을 접지만, 이후 스스로 만들어낸 부인의 환영과 대화하며 새 출발을 할 용기를 얻습니다. 이 설정을 두고 수많은 팬들은 잘못한 사람이 혼자 북치고 장구친다며 비난했죠. 동일한 잣대라면 <프랑스여자>가 미라에게 주는 기회에 딱히 좋은 시선을 보내기는 어렵습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유약함을 자신의 결함과 동일시하게 한 뒤 수많은 장면과 설정의 구실로 사용합니다. 실체 없는 프랑스나 파리지앵 감성에 필요 이상으로 취해 있기도 하구요. 이야기 자체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참신하면서도 의외로 효과적이지만, 단순히 후회를 다루는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그럴듯하게 잘 포장한 변명이라는 께름칙함이 발목을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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