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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n 08. 2020

<에어로너츠> 리뷰

정처없는 부양


<에어로너츠>

(The Aeronauts)

★★☆


 단순히 개봉이 밀리고 밀려 기다린 영화들도 있지만,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볼 만한 영화들도 한동안 찾기 어려웠죠. 신작들 가운데 오랜만에 그 목마름을 채워 줄 작품이 나왔으니, 바로 톰 하퍼 감독의 <에어로너츠>입니다. 탁 트인 영상미를 내세웠음에도 스트리밍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공개되었는데,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되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요.



 19세기 런던, 예측불허의 하늘을 이해하고 싶은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와 가장 높은 하늘을 만나고 싶은 열기구 조종사 아멜리아 렌. 누구보다 앞서 날씨를 예측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기 위해 팀을 이룬 그들은 열기구를 타고 일생일대의 모험을 시작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험난한 하늘길은 호기롭게 나선 그들의 앞을 끊임없이 가로막습니다.


 보시다시피 역사는 기억하지만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소재들 중 하나입니다. 모두가 미쳤다며, 한심하다며 웃고 손가락질하는 와중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목표를 달성해 결국엔 세상의 박수를 받아내는 감동 실화죠. 최초 혹은 최고 타이틀이 걸려 있으면 더욱 좋은데, <에어로너츠>는 반갑게도 둘 다에 해당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창공에 열기구 하나만 걸려 있습니다. 전자제품 판매점 로비를 수놓아도 손색없는 화면이 러닝타임 내내 이어집니다. 어차피 주인공들은 눕기도 어려운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으니 촬영도 쉽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영상미를 자랑하기만 하면 됩니다. 실제로 고소공포증이 있는 입장에서 관람이 힘들었다는 후기까지 있으니 기술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애석하게도 각본상으로는 관객들의 흥미나 집중력을 붙잡아 둘 재료가 처음부터 많지 않습니다. 이륙과 동시에 하늘 위로 끊임없이 동동 떠오르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전개가 없는 탓입니다. 때문에 비와 바람을 머금은 구름을 통과하거나 나비 떼를 만나는 등 시각적인 변주를 주기적으로 시도하는데, 러닝타임도 100분으로 아주 길지는 않은 덕에 그럭저럭 먹히는 편이죠.



 사실 따져 보면 글레이셔와 렌의 이야기에선 열기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보다는 모험을 시작하게 된 과정과 결과가 학계와 사회에 끼친 영향에 주목해야 합니다.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뜻한 바를 밀어붙였고, 그 덕에 모두에게 인정받았음은 물론 일기예보라는 획기적인 시스템의 토대에 기여했죠. 기구 안에서의 일은 기구도 기술도 글레이셔의 것이 아니기에 영화의 지향점이 흐트러집니다.


 어느 모로 보나 <에어로너츠>는 제임스 글레이셔를, 혹은 그의 업적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아멜리아 렌을 글레이셔와 동일한 주연급 캐릭터로 내세우죠. 글레이셔와는 일면식도 없던 인물이 그저 기구를 다루는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각본에 끼어드는데, 남편과의 개인사처럼 영화의 줄기와는 큰 관련도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엮으며 극의 절반을 가져갑니다.


 

 어떻게든 렌을 돋보이게 할 방법을 찾던 영화는 글레이셔를 깎아내리기로 결정합니다. 보다 보면 글레이셔는 전문성은 물론 사회성까지 떨어지는 똑똑한 괴짜에 불과하고, 렌은 그런 글레이셔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와 사고를 영웅적으로 해결하는 선인이죠. 심지어 이 모험의 의의를 정리하고 영화를 마무리하는 최후반부의 내레이션마저 글레이셔가 아닌 렌의 목소리를 빌립니다.


 실화가 정말로 이랬다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놀랍게도 실존했던 제임스 글레이셔와 달리 아멜리아 렌은 <에어로너츠>가 창작한 가상의 인물입니다. 실제로는 헨리 콕스웰이라는 동료 학자가 글레이셔와 함께 하늘로 나섰죠.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각색이 금지될 수는 없겠지만, 의도를 증명하지 못한 것은 물론 실화의 의의마저 해칠 정도라면 좋은 각색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의 스포트라이트는 둘밖에 되지 않는 주연들 사이에서도 방황하며 조연들을 눈 밖으로 내몰고, 열기구 안에서의 활약도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하기엔 다소 심심합니다. 쨍한 화면은 커다란 스크린으로 감상해야 제맛이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삼삼한 실화에 유행에 맞춘 가위질을 최대 강점으로 삼으려 했다면 좀 더 일관성을 갖춘 창작물로 나왔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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