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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n 22. 2020

<사라진 시간> 리뷰

오해로 산 이해


<사라진 시간>

★★★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사라진 시간>입니다. 조진웅, 배수빈, 정해균, 차수연, 이선빈, 신동미 등이 이름을 올렸고, 당초 <클로즈 투 유>라는 제목으로 기획되었으나 개봉을 앞두고 변경되었죠. 손익분기점이 27만 명으로 상당히 낮은 덕에 비교적 한산한 극장가에도 개봉을 결정할 수 있었던 듯 합니다.



 한적한 소도시의 시골 마을, 외지인 부부가 의문의 화재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하게 된 형구는 마을 사람들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단서를 추적하던 중,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충격적인 상황에 빠지죠. 내가 알던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형구의 추적이 시작됩니다.


 얼핏 줄거리만 읽어 보면 미스터리 스릴러의 향기가 진하게 납니다. 하루아침에 눈을 뜨니 사람들이 자신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살인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던 형사였던 나를 모두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기획한 것인지, 짐작도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규모는 거대하고 수법은 완벽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습니다.



 누구나 당연히 인물보다는 사건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고 예상할 겁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이를 계획한 사람이나 세력이 있을 것이고, 뒤를 밟는 주인공은 예상치 못한 진실과 마주하는 전개가 보통이죠. 계획과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 동기, 그를 풀고 쫓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이 영화의 완성도를 좌우하곤 합니다. 말 그대로 사건의 전말이 열쇠인 셈이죠.


 그런데 <사라진 시간>은 다릅니다. 달라도 굉장히 다릅니다. 알아야 할 것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대중성이나 상업성으로 바꿔 말할 수 있는 진입 장벽이 아주 높습니다. 멍하니 보다 보면 어느 순간에서부터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는데, 놓친 단서를 따라가고 싶게 만드는 전개도 아닌 탓이 가장 큽니다. 다시 말해 관객이 스스로, 그것도 아주 열심히 눈알을 굴려야 합니다.



 영화가 나서서 설명하는 것이 없습니다. 떡밥이나 복선은 물론, 일정 시점을 지나면 정말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초자연적인 것까지 다 깔아놓고는 그냥 흐르는 대로 흘러갑니다. 심지어는 주인공이 방금 죽인 사람이 멀쩡히 살아서 걸어나오는데도 영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답답해하다 보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사라진 시간>이 주인공 형구의 내면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은 형구의 내면을 구성하고 설명하기 위한 일회용 근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혼란스럽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공룡이 튀어나와도 <사라진 시간>에서는 전혀 이상하거나 설명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영화의 시선대로라면 형구는 의외로 특정하거나 특수한 인물이 아닙니다. 얼핏 멀쩡한 사람들 사이에 섞인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고 있지만, 형구는 영화에 등장하는 소수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상황에 놓인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 세상에 홀로 놓인 것만 같은, 자신을 제외하고서는 당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홀로 안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렇게 놓고 보면 <사라진 시간>의 출발점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망망대해와도 같은 세상에서,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잣대 없이 내 마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단 한 사람. 내 속을 털어놓다가 억울하고 숨이 막혀서 이제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서서히 세상에 나를 맞추자고 결심했을 때 나타나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처음으로 마주해 그간의 설움을 내려놓는 바로 그 순간이죠.


 이것이 영화가 스스로 내놓은, 방금까지 쌓아올린 물음표들을 설명하지 않을 이유입니다. 영화는 그저 주인공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의 심리적 고독이 일상을 침투하고 지배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죠. 대담하지만 위험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또 자주 시도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효과적이지만 효율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참으로 작은 곳에서 크고 멀리도 왔습니다. 마법과도 같다고 이야기하려 요술을 부렸습니다. 접근법이 신선한 것도 사실이지만, 누구도 이 방법을 시도하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얻기 위해 잃은 것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진 듯 한데, 어떻게 보면 감독으로 나선 이상 한 번쯤 부려 볼 욕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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