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Jun 29. 2020

<#살아있다> 리뷰

인스타용 생존기


<#살아있다>

★☆


 잠잠했던 극장가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영화, <#살아있다>입니다. 제작 초기에는 <얼론>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으나 개봉을 앞두고 제목을 변경했죠. 조일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유아인과 박신혜를 투톱으로 내세운 작품입니다. 기대작이란 기대작은 죄다 개봉을 연기한 가운데 용감하게 나섰고, 덕분에 첫 주에 한동안 비현실 그 자체였던 관객수 10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원인불명의 폭력성을 보이며 통제 불능에 빠진 도시. 영문도 모른 채 잠에서 깬 준우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고립된 채 생존을 시작합니다. 물부터 전기까지 하나둘씩 끊겨 가는 상황, 연락이 두절된 가족에 이어 식량마저 바닥이 나며 한계에 다다르죠. 그러나 그 순간 또 다른 생존자 유빈의 존재를 알게 된 준우는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좀비 영화는 어엿한 하나의 장르가 되었지만, 좀 더 세분화하자면 두 종류로 나뉩니다. 바이러스의 창궐부터 백신 발견까지의 흐름을 상업적으로 풀어내는 영화가 있고, 좀비를 일종의 재난으로 묘사하며 극한의 생존물로 그리는 영화가 있죠. 보통 빵빵한 제작비로 눈요기를 선사하는 영화들이 전자, 캐릭터의 내면과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파고들며 제한된 주머니 사정을 극복하는 영화들이 후자입니다.



 <#살아있다>는 어느 모로 보나 뒤쪽이죠. 껍데기만 봐도 영화 내내 달랑 두 명이 조그마한 아파트 단지에서 복작대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 소재인 좀비만 따져도 떼로 몰려드는 물량 승부보다는 기억에 꽂힐 만한 개체 하나하나에 힘을 줍니다. 옆집 청년, 아파트 경비원, 닫힌 방의 그녀 등 우리 분장팀이 이렇게 고생했다는 증거를 하나씩 꺼내들죠.


 출발은 과감합니다. 잠에서 깨어 게임이나 하다가 세상이 뒤집힌 모습을 목격한 주인공과 관객들의 시선을 일치시킵니다. 좀비의 기원을 설명하거나 특징을 분석하는 대신 앞으로 쭈욱 몰입해야 할 우리 준우를 더 보여주려 하죠. 등장인물을 줄이고 영화의 무대를 한 장소로 굳히는 등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든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시작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많은 것이, 어쩌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주기적으로 한 편씩 나오는, 빈약한 각본과 넘치는 설정 구멍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영화죠. 지적할 것들을 열거하면 떠드는 시간이 영화의 러닝타임보다 길어질 영화입니다. 속하려고 한 어떤 장르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고, 전달하려는 어떤 메시지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살아있다>는 재난 생존 영화의 기본부터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길 가는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면 대답할 법한 상식들조차 무시합니다. 물이 콸콸 쏟아지는 화장실과 욕조가 있음에도 식수 확보에 게으르고, 옆집과 온 아파트 단지를 쑤시고 다니면서도 핸드폰 신호 잡아보겠다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대신 발코니에 매달리는 모험을 택합니다.



 그보다 더욱 큰,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죄다 보여주면서 설명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직전에 나왔던 장면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설정들조차 아주 뻔뻔하게 내보이죠. 여느 대작 드라마 부럽지 않은 PPL로 도배를 할 정신은 있으면서 20일 내내 준우의 수염과 빡빡머리는 자라는 척도 하지 않습니다.


 옆집은 마침 등산 애호가라 무전기가 있고, 앞집은 마침 생존 전문가라 손도끼가 있고, 윗집은 뭘 하고 사는지 연막탄(!)이 있습니다. 물이 끊겼다며 좌절하더니 비 한 번 왔다고 라면을 끓여먹고, 전기가 나갔다더니 핸드폰 배터리에 인터폰도 문제없습니다. 심심하면 망원경으로 밖 보던 사람이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좀비떼 한가운데로 돌진해 살아남는 초인이 식탁에 부딪쳐 기절합니다.



 유빈은 8층에 좀비가 없다며 8층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온 아파트 단지에, 온 층에 깔린 좀비들이 8층에만 없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길이 막혀 있거나 좀비가 싫어하는 무언가가 있기를 기대하겠죠. 그렇게 주인공들은 우여곡절 끝에 8층에 도착하지만, 뒤를 쫓던 좀비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계단으로 그들을 추격합니다. 왜 지금까지 없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게으르고 무책임한 전개가 영화 내내 반복됩니다. 일단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 특정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들의 행동을 묘사할 뿐, 앞뒤가 연결되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좀비들이 어느 날 갑자기 홀린 듯 지금껏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면 영화는 아주 당연히 이 이유를 설명해야 하지만, 이를 본 주인공들의 반응만 묘사하며 어떠한 근거나 정당성도 확보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토록 비일관적이고 무성의한 태도 탓에 어쩌면 지금 벌어지는 이 모든 상황이 일종의 환상, 혹은 거대한 은유라는 착각까지 들었습니다. 보통의 가정집에 있지도 않을 구호물자들이 널려 있고 준우는 수염조차 자라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꿈인 것이 틀림없거나, 출세의 상징인 한강 근처에서도 제한된 물자와 환경에 좌절하는 모습으로 계급 사회를 풍자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헛된 희망을 품었죠.



 그러나 이토록 단순하고 기초적인 것조차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모르는 영화에 그런 고차원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은 말 그대로 망상에 불과했습니다. 생존 게임을 즐겼으니 필요 물품을 확보하는 데 능하고,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말했으니 지상으로 정면돌파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영화에게 그 이상의 영리함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가족애부터 뒤틀린 사랑까지, 재난 생존 영화와 좀비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장면들엔 죄다 욕심을 부립니다. 다른 장면이나 설정들과 마찬가지로 앞뒤 설명도 없이 집어넣고 보는 것은 똑같은 터라 설득이 되지 않는 건 매한가지죠. 직전까지 나오지도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온갖 분위기를 잡으며 뭘 어떻게 하든 말든 관객 입장에서는 알 바도 몰입할 바도 아닙니다.



 제목이 <#살아있다>인 영화치고, 러닝타임 내내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영화치고 '생존'이라는 단어의 폭발력도 볼품없습니다. 동종 영화들을 죄다 꺼내 비교해 봐도 이 정도면 손에 꼽을 정도로 등따시고 배부르며 운까지 빵빵한, 나중에 그 잘난 SNS와 개인 채널에 좋아요와 구독을 부르짖는 안주거리 영웅담 꺼내놓기 딱 좋은 이벤트쯤에 불과합니다.


 이 시기에 영화 팬들이 그리워한 활기를 되찾아 주었다는 데엔 훌륭한 의의가 있습니다. 주연배우 유아인에게는 <사도>의 행렬 장면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연기력을 과시할 (역시나 뜬금없는) 자리도 몇 번 마련되었구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의 쏟아지는 관심을 감당할 내실은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남은 기대는 우연찮게도 이 열기를 곧바로 이어받을 또 한 편의 좀비물에 걸어 봐야 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라진 시간>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