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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4. 2020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리뷰

뉴스만큼 공정하고 뉴스처럼 치우친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Bombshell)

★★★


 2015년 <트럼보> 이후 4년만에 돌아온 제이 로치 감독의 신작, <밤쉘>입니다.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샤를리즈 테론과 마고 로비를 올려두었고, 최종적으로는 분장상을 수상하며 한 개의 트로피를 가져갔죠. 보통 아카데미 작품들은 시상식 시즌에 맞춰 연초에 개봉되곤 하지만, 반 년을 더 기다린 7월에야 국내 극장가를 찾았습니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와 설전을 벌인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 언론 권력의 제왕이라 불리는 폭스 뉴스 회장을 고소한 앵커 그레첸 칼슨, 그리고 야심 가득한 뉴페이스 케일라 포스피실. 각기 다른 삶의 각기 다른 지점에 선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내기로 마음먹은 선언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세상을 바꿀 도화선이 되려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폭발력을 기대할 소재입니다. 영화가 내려는 목소리를 대입할 사건은 실제로 끊임없이 터지고 있고, 이 긍정적인 선순환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하죠. 막연한 두려움에 나서지 않으려던 사람들이 용감하게 나서 세상을 바꿉니다. 이들의 위대함과 대담함을 칭송하지만, 동시에 이 출발점을 지나치게 포장해 특수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으려 하죠.


 

 단순한 전달에 그치지 않고 영화적 재미를 확보하려는 시도도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카메라를 보고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소위 제 4의 벽을 깨는 연출이 대표적이죠. 소재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관객들의 집중력을 순간적으로 회복하기 좋은데,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 쇼트>가 꽤 많은 영화들에 영향을 끼쳤음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마고 로비가 맡은 케일라 포스피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루퍼트 머독, 로저 에일스, 메긴 켈리, 그레첸 칼슨 등의 다른 주조연들과 달리, 케일라 포스피실은 각본의 생기를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죠. '야망과 자신감으로 가득한 사회 초년생'은 메긴과 그레첸은 물론 관객들이 지인이나 자기 스스로를 투영하기 아주 쉬운 인물입니다. 평범한 개성만으로 큰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죠.


 그렇게 만들어낸 <밤쉘>은 영화적인 재미와 사실 전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습니다.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각각의 재료들을 열심히 다듬었죠. 무엇을 어떻게 말하겠다는 만반의 준비가 돋보입니다. 사건을 불필요하게 직접적으로 재현하거나 감정의 늪을 만들어내는 등 순간의 동요를 위해 자극적인 화면을 남발하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재료 하나하나에 이렇게 공을 들였으면 한데 섞여 시너지를 내야 할 텐데, 어째 분명히 같은 사건에 비슷한 사례로 묶인 인물들이 서로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하나의 공간에 있고 시기상 같은 일에 엮였을 뿐, 옴니버스식 구성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와 독립적이죠. 애초에 동일한 그릇이 아니었기에 자연히 이야기가 한 쪽으로 쏠리게 됩니다.


 이 때의 쏠림은 실화와 극화의 태생적인 한계에서 발생합니다. 그레첸은 중반부에서 최후반부까지 사실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방송국에서 퇴장하기 때문입니다. 케일라는 이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무게감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만들어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둘 다 각본상의 역할은 아주 명백하고, 연대를 강조한 영화치고는 교류가 꽤 드뭅니다.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샤를리즈 테론의 메긴입니다. 그레첸과 케일라라는 캐릭터의 장점이자 특징을 모두 갖고 있고, 각자의 장점은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이기에 메긴은 자연스럽게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되죠. 그러나 영화는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인물과 사건 중 사건을 택해야 했으나 인물을 택했고, 인물 중에서는 메긴을 택해야 했으나 끊임없이 시선을 돌리죠.


 케일라와 메긴, 그레첸은 각각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개성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와의 경계가 불명확하죠. 때문에 영화도 셋의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출을 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주인공이 세 명씩이나 됨에도 중반부 이후의 단조로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왜인지 로저의 편에서 방송국 직원들에게 티셔츠를 나눠주던 직원처럼 그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상이 필요했죠.



 물론 도널드 트럼프나 루퍼트 머독 등 지금 이 순간까지도 누구보다 건재한 이름들 탓에 일부러 택한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로저 에일스라는 단 한 개의 이름만 쳐내서 해결됐다고 말할 사건이 아님에도, 엄청난 화력으로 불을 지르기보다는 불씨를 당기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어느 쪽이 되었건 불꽃을 본 것은 사실이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해낸 것도 사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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