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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7. 2020

<반도> 리뷰

패션 광기의 말로


<반도>

★★


 2016년 개봉되어 관객수 1157만 명이라는 깜짝 초대박을 터뜨린 <부산행>. 감독과 제작사 모두 이 달달한 열매를 한 입만 먹고 싶지는 않았겠지요. 마침 요새 한창 유행하는 K-좀비의 1세대 자부심도 좀 부릴 수 있겠다, 강동원과 이정현을 데리고 돌아온 <반도>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대작인지라 최근의 그 어떤 영화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았더랬죠.



 4년 전, 나라 전체를 휩쓴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정석. 그러나 새 삶을 시작할 제안 탓에 지옥이나 마찬가지인 반도에 다시 들어갈 처지가 됩니다. 제한 시간 내에 지정된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나가던 중, 인간성을 상실한 군부대와 대규모 좀비 무리가 정석 일행을 습격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폐허가 된 땅에서도 살아남은 한 가족의 등장은 서로의 새로운 희망이 됩니다.


 좀비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과 전염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있고, 이를 일종의 재난으로 묘사하며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보통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있죠. 전개 방식도 꽤나 정형적인 터라 제작자의 의도보다는 제작비가 허락하는 방향대로 나아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단 대규모 재난을 묘사하려면 다른 것보다도 돈이 필요할 테니까요.


 <부산행>은 후자였고, 그 후계자를 자처한 <반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생겨서 치료가 어떻게 되니 마니 하는 대신,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하나씩 꺼내드는 각자의 본모습에 주목하죠. 사람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난 괴물들을 두고서도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인간이라는 공포가 극의 전반을 차지합니다.



 때문에 좀비 영화임에도 막상 좀비들은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합니다. 중요한 건 그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과 그들이 각자 택한 생존의 방식이죠. 생명은 모두 소중하니 다른 사람이 죽는 건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 있으면 남들을 깔아뭉개고 혼자 살아남겠다고 버둥대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묘사 방식이 바로 <부산행>과 <반도>가 갖고 있는 유일한 연결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반도>엔 <부산행>의 속편 혹은 스핀오프라고 불릴 이유가 딱히 없습니다. 좀비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세상은 좀비 영화라면 거의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설정이고, 바이러스가 부산에서 크게 퍼졌다는 이야기 정도야 누구나 할 수 있죠. 아주 교묘하게 숨겨둔 것일지는 몰라도, 캐릭터나 장소 등 눈에 띄는 전편의 흔적 또한 한 개도 없습니다.



 출발은 좋습니다. 강동원의 정석은 이번 재난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전직 군인입니다. 동기도 확실하고 능력도 확실합니다. 깔끔하고 강력한 액션을 소화할 근거가 충분하죠. 목숨을 건 임무에 뛰어드는 과정 또한 본인 욕심보다도 몇 남지 않은 자기 사람을 지키기 위함이 느껴집니다. 안고 있는 상처는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는 회한이 기저에 깔린 매력적인 캐릭터죠.


 하지만 정석은 영화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중반부 이후에야 극에 참전하는 이정현의 민정이죠.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 준 정석과는 달리, 모든 속성들이 완성된 이후에 등장하는 탓에 그냥 보여주는 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인물이죠. 김민재의 황 중사나 구교환의 서 대위와 다를 것이 없지만, 정석과 같은 지위를 가져가며 중후반부를 무너뜨립니다.


 

 <반도>는 정석 원톱의 영화가 되어야 했습니다. 다른 인물과 설정들은 정석을 둘러싸고 진행되어야 했고, 사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한 명의 주인공을 가운데에 두어야 했습니다. 좀비 서바이벌 게임이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어설프게 흉내낸 질주 등 만들고 싶은 장면들의 욕심이 모이고 모여 정석이라는 영화의 유일한 장점마저 일찍이 부수니 장면의 나열 빼고는 남은 게 없습니다.


 <매드 맥스>는 뜨거운 사막과 언제든 누구나 달릴 수 있는 평지를 사이에 둔 도시와 부족들의 갈등 상황이 기본이었죠. 때문에 탈것을 무기화하고 요새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반도>의 군인들은 한 곳에서만 처박혀 다른 탈것이 아닌 좀비들과 맞서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과 함께: 인과 연>에서 갑자기 랩터가 무섭다며 <쥬라기 월드>를 갖고 온 장면의 하위호환 격입니다.


 이처럼 그럴듯한 껍데기부터 씌운 뒤 이유는 생략하는 접근법은 대부분 특정한 비주얼을 탐내면서 발생합니다. 이런저런 그림을 만들어 보고 싶으니 일단 집어넣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멀쩡한 근거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설명을 붙였다간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니 대충 재밌게 본 사람들이 더 훌륭한 생각을 해 주길 바라면서 공란으로 남기고, 각본의 설득력은 그대로 바닥을 치죠.



 민정만큼이나 과분한 비중을 받은 두 딸은 운전 실력부터 영어회화는 물론 희고 고른 치아까지 설정 구멍들을 의인화한 수준이고, <매드 맥스>의 흉내내기의 연장선이자 과함으로 치장한 군인들은 영화의 개성을 망칩니다. 이쯤 되면 트럭 트렁크를 열어보지도 않는 사람들이나 자동차에 볼링 핀처럼 치이는 좀비들의 물리법칙은 아주 사소하고 시덥잖은 불만에 불과하죠.


 정상이라는 사람들과 미쳤다는 사람들 모두 외모로만 그렇게 주장할 뿐 막상 사고나 행동은 예측 가능한 범주를 절대 벗어나지 않습니다. 뭘 할 때마다 바보처럼 실실대는 것이 광기가 아니라 라이브 토크쇼에서 진행자 머리를 날리는 것이 광기입니다. 개성을 확보하겠다는 일련의 시도 하나하나가 매번 개성을 망침에도 정작 영화 본인은 끝까지 이를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 10분의 발악이 그 정점이구요.



 <반도>는 좀비 영화도, 액션 영화도, 재난 영화도 아닙니다. 트럭을 탈취하는 영화도 아니고 반도를 탈출하는 영화도 아닙니다. 정석이 주인공인 영화도 아니고 민정이 주인공인 영화도 아닙니다. 인물이 중심이 되는 영화도 아니고 사건이 중심이 되는 영화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지향하다가 아무 것도 아니게 된, 수많은 영화들의 초라한 전철을 밟은 또 한 편의 영화입니다.


 <부산행>의 속편일 필요는커녕 좀비 영화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좀비는 대강 멀쩡한 사람들의 멀쩡한 신체와 자산을 노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면 충분했고, 한정된 폐허와 자동차만 있으면 가능한 영화였습니다. 장점이 없는 영화였다면 바랄 것도 없었겠지만, 살렸어야 하는 소수의 장점들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나머지 수많은 단점들과 뒤섞으며 자멸한 터라 더욱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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