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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Sep 15. 2020

<뉴 뮤턴트> 리뷰

360도 돌연변이


<뉴 뮤턴트>

(The New Mutants)

★★


 영화 개봉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지 누가 알았을까요. 당초 2018년 4월 개봉을 목표로 예고편과 포스터까지 뿌렸던 영화가 연기에 연기에 또 연기를 거듭해 2020년 9월이 되어서야 나왔습니다. 재촬영 논의부터 스트리밍 공개까지 몇 번의 위기를 넘겨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았네요. 아마 배우들조차 촬영장 이야기를 물어보면 까먹어서 대답하지 못할 것만 같은 <뉴 뮤턴트>입니다.



 대재앙이 덮친 마을에서 혼자 살아남은 대니가 눈을 뜬 곳은 어딘지 모를 병실. 의사 겸 보호자를 자청하는 레예스 박사는 이제 안심하고 치료를 받으라며 따뜻한 말을 건넵니다. 그렇게 대니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돌연변이인 레인, 일리야나, 샘, 그리고 로베르토와 함께 생활하게 되지만, 그녀의 등장과 함께 벌어진 끔찍한 일들은 방황하던 주인공들의 능력과 감정을 다시금 깨우기 시작합니다.


 제작사가 팔려가며 <엑스맨: 다크 피닉스>조차도 그 대단한 배우들과 전작들을 가지고도 허공으로 날아가고 만 마당에, 신인 배우들을 데리고 만든 실험적 장르 영화에 쏟을 관심이나 의지는 누구에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잘 되어도 이런저런 계약 문제로 시리즈화가 사실상 불가능한지라, 신나게 버린 돈 한 푼이라도 더 주워담고자 억지로 개봉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불운한 영화죠.


 <오리지널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왕좌의 게임>, <기묘한 이야기> 등 TV 시리즈 유행 따라 불러모은 배우들의 인기도 철이 한참 지나 버렸습니다. 그나마 <23 아이덴티티>부터 꾸준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아냐 테일러 조이 정도가 입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데드풀> 1편까지 끌어모아도 엑스맨 시리즈 중 가장 엑스맨과 거리가 먼 엑스맨 영화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십수 명이었어도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살아있었던 시리즈가 고작 다섯 명도 버거워합니다.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 현재 시점에서 시작해 각자에게 얽힌 과거의 사연들을 하나씩 풀어내는 구성인데, 기본적인 능력 설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마당에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켜 봤자 10대 청소년으로나 돌연변이로나 개성이라고는 없습니다.


 주인공 없이 인물과 사건의 균형을 맞추며 나아가야 할 영화에 주인공을, 그것도 어쩌면 다섯 명 중 무색무취하기로는 선두를 다툴 대니를 앞세웠습니다. '아픈 가정사'는 지금껏 열 편쯤 되는 영화들에서 봐 온 수십 수백 명의 돌연변이들에겐 말하기 능력만큼이나 흔한 속성입니다. 자비에 영재학교 학생 14 정도의 사연을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풀어야 할 과제쯤으로 여기니 성에 찰 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특정 시점부터는 영화도 대니라는 캐릭터가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음을 알아채고는 일리야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립니다. 이 급작스러운 관심에 흥분한 일리야나는 갑자기 본인이 림보 세계의 여왕이라며 설명도 근본도 없는 초능력으로 오로지 눈요기에만 집중한 활약을 펼칩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디아블로가 너무나 갑작스레 고대신으로 변신했던 장면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누가 봐도 병원이 아닌 곳이 사실 병원이 아니었다는 전개도 통탄스러울 지경입니다. 당연히 전제로 한 뒤 무언가 다른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상황을 끊임없이 늘어뜨리며 모든 구성 요소들의 잠재력을 포기합니다. 설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 자체를 시도조차 하지 않아 더욱 당황스럽습니다. 호러도 스릴러도 되지 못한 각본 곳곳에 자포자기의 향기가 진동합니다.



 영화가 시작되어야 할 곳을 끝으로 잡고 달리니 94분도 버겁습니다. 부족한 장면을 재촬영할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남은 장면들을 계속 찍었어야 하는 영화입니다. 처음부터 버렸어야 하는 캐릭터나 사건들은 언급할 이유도 없고, 그나마 가져가야 했던 극소수마저 통째로 소용돌이 속으로 침몰했습니다. 엑스맨이라는 이름값에겐 정말이지 초라하고 볼품없는 퇴장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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