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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19. 2020

<소리도 없이> 리뷰

시비와 선악의 각자도생


<소리도 없이>

★★★☆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유아인, 유재명, 문승아가 힘을 합친 <소리도 없이>입니다. <#살아있다> 촬영과 겹쳤는지 여전히 머리가 시원한 유아인 배우의 노개런티 출연으로 순제작비를 13억 원으로 줄였고, 그럼에도 어째 10월 개봉작들 중에서는 가장 강한 영화가 되어 버렸죠. 낮은 제작비 덕에 알려진 손익분기점은 70만 명이라 의외로 달성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근면성실하고 전문적인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태인과 창복. 어느 날 단골이었던 범죄 조직의 실장 용석에게 부탁을 받고 유괴된 아이 초희를 억지로 떠맡게 됩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아이를 돌려주려던 두 사람 앞에 용석이 시체가 되어 나타나고,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진 초희와의 예기치 못한 동행이 시작되죠.


 마침 개봉 시기도 비슷해 설정만 놓고 보면 아주 어두운 <담보>라고 불러도 좋아 보입니다.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남정네들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나고, 누구도 뜻하지 않은 만남 덕에 서로가 서로를 바꾸는 전개를 예상할 수 있겠죠. 시체 처리라는 무서운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초반부만 놓고 보면 어째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사람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 상업적인 공식을 어느 정도 따라갑니다. 틈만 나면 탈주로를 엿보던 초희는 이윽고 두 아저씨들의 곁을 머물며 자신의 역할과 존재감을 공고히 합니다. 잘 씻지도 않으며 아무 옷이나 주워입던 태인 남매의 돼지우리(?)는 초희의 등장 이후 그럭저럭 살 만한 공간으로 탈바꿈하죠. 어지간히도 삐걱대던 첫 만남치고는 아귀가 곧잘 맞아들어갑니다.


 어째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고문과 살인, 인신 매매를 업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다들 참 예의도 바르고 인간적입니다. 시체 처리반은 동네 할머니에게 계란도 챙겨 주고, 자기 전에 기도 테이프도 열심히 듣습니다. 조직의 실장이라는 사람은 좀 불편해 보이는 아이 앞에서 입 모양도 키우고 용돈도 줍니다. 그 뒤에 서 있는 덩치들은 수고한다며 박카스를 주면 공손히 인사까지 하며 받아갑니다.



 쉽게 말해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나빠야 할 것 같고, 실제로 나쁜 것이 맞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왜인지 속은 그러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여린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것만 빼면 사람은 참 좋다고 할 만한 하지만, 그 '이것'을 빼고 생각하기가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세계에선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는 이상적인 풍경입니다.


 바깥의 세계와는 정반대의 풍경입니다. 부모라는 사람들은 유괴된 아이를 그렇게 열심히 찾지 않습니다. 그런 아이가 돌아다니는 걸 직접 목격한 경찰도 웬 해로운 들개 하나쯤 본 것으로 설렁설렁 넘어갑니다. 속이 아닌 겉으로 유지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맞는 것이 아닐 뿐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태인과 창복의 세상은 얼핏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틀린 곳이죠.


 초희는 두 세계의 중간자입니다. 들어올 때는 말 그대로의 가면을 쓰고 있고, 나갈 때는 사라진 가면을 다시금 스스로 쓰는 인물이죠. 가면이 필요없다고 해서 틀린 것이 맞는 것이 되지도, 가면이 필요하다고 해서 맞는 것이 틀린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겉과 속 중 무엇이 옳다는 진리는 없습니다. 각자의 세상에서 옳은 방법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다른 곳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착각은 금물입니다.



 태인이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설정이나 계단에 기댄 창복의 뒤편 창문에 적힌 문구 등 스스로의 창작력에 취한 듯한 모습도 왕왕 보이긴 하지만, 인물과 사건을 커다란 퍼즐의 조각들로 배치하고 구성한 작품치고는 현실성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테넷>이 최근의 친절한 영화들 가장 불친절한 영화였다면, <소리도 없이>는 최근의 불친절한 영화들 중 가장 친절한 영화쯤 될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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